인조와 소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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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7년전쟁 중 명나라와 조선이 일본과 싸우는 도중

만주 지방에는 후금이 점차 세력을 키워갑니다.

그러면서 후금은 힘을 키워가며 명을 위협합니다.

위기를 느낀 명은 조선에게 원병을 요청합니다.

임진왜란 때 우리가 너희 조선을 도와주었으니 이번에는 우리를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임금인 광해군은 실리를 추구하는 왕이었습니다.

나라의 힘은 없는데 명나라 편에 설 수도 없고, 후금에 설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서 중립외교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당시 일부의 정치 세력들은 참으로 의리 없는 짓이라고 하며 반정을 일으킵니다.

그게 바로 1623년에 서인들이 주도하여 일으킨 인조반정입니다.


후금은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조선을 바라보니, 

명나라와의 명분만 고집하는 서인정권이 들어서 있는 것을 곱게 볼리 없었습니다.

"어라! 우리를 반대하는 것들이 왕을 해먹고, 나라를 다스리고 있네! 

군신 관계를 요구하며 손 좀 봐줘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1636년 12월에 청나라가 조선을 침입한 전쟁이 병자호란입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로 미처 피신하지 못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합니다.

그동안 청군은 조선땅을 마음껏 유린하고,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청군의 공격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치욕적인 항복을 합니다.

그리고 청의 황제 태종에게 삼배구고두례(세번 절을 하는데 절할 때마다 세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의 예를 올립니다.


인조는 정축화약의 항복 조건으로 내세운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청나라에 볼모로 보내게 됩니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머물면서 아담 샬 신부를 만나 서양문물을 접하게 됩니다.

놀라운 서양 문물을 보며 소현세자는 조선도 청나라처럼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9년간의 볼모 생활이 끝나고 조선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와서는 인조에게 청의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청나라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인조는 꿈에서도 잊지 못할 치욕을 청나라에게 당했는데 

그런 나라와 화친해야 한다는 소현 세자의 말을 듣고 슬슬 분노에 가까운 화를 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소현세자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자 인조는 서둘러 장례를 치르고 서삼릉 소경원에 안장시킵니다. 


세자가 죽었으니 다음 세자는 당연히 세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조는 소현세자 후임으로는 봉림대군을 세자로 올립니다.

그리고 인조는 세자빈 강씨도 역모로 몰아 죽이고, 소현세자의 세 아들 중 두 아들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친명배금이라는 나라의 정책을 잘못 선택하여 나라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어 백성들을 참혹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 조선의 희망이었던 소현세자와 가족들까지 무참히 죽인 인조의 행동이 정말 아쉬운 대목입니다.

만약 소현세자가 무사히 왕위에 올랐다면 조선의 개화는 일찍 되어 나라가 부강해지고, 백성들도 편안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소현세자처럼 혜안을 지닌 사람이 국가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국가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을 띠었고, 이목구비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피가 나오므로, 검은 멱목(천)으로 얼굴 반쪽만 덮어 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별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사실을 외인들은 아는 자가 없었고, 상도 알지 못했다.(소현세자 죽은 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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