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리 아들 영조 왕위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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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자기 관리가 철저했던 임금을 꼽으라면 영조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무수리인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탕평책을 펼치며

인재를 고루 등용했던 왕인 영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저는 영조하면 사도세자가 떠오릅니다.

자신의 아들을 뒤주에 넣어 비참한 최후를 맞게 한 영조.

어떻게 자신의 아들을 그렇게 죽일 수 있을까?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영조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영조는 숙종과 무수리 최씨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숙종은 장희빈 사이에서 경종을 두었는데 경종은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습니다.

경종을 밀었던 소론 세력들은 연잉군(영조)를 지지하던 노론 세력들과 정치적으로 티격태격하며

붕당정치를 하였습니다.

노론들은 경종이 후사가 없으니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하라고 하고, 

더 나아가 대리청정 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노론은 장희빈이 사사될 때 찬성했던 사람들로 구성된 정치집단입니다. 

그러니 경종이 왕위에 있으면 자신들의 안위가 보장되지 않으므로,

연잉군을 지지하여 어떻게 해서든 왕위에 올려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경종은 노론을 역모로 다스려도 시원치 않을 사건이지만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하고, 대리청정 시키고, 

또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했지요.

영조는 이렇게 노론과 소론들의 싸움 틈바구니 속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며,

붕당정치의 폐해를 몸소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왕위에 오르자 탕평책을 실시한 것입니다.

즉 어느 당파든 능력과 재능에 맞는 인재를 등용하여 나라의 발전을 도모한 것입니다.

영조의 이런 노력으로 정치가 빠르게 안정되어 갑니다.

또한 균역법을 실시하여 군포를 2포에서 1포로 줄여줍니다. 

군포란 군대를 안가는 대신 세금으로 옷감을 내던 것을 말합니다.

그동안 지방 관리들이 군포를 많이 걷거나, 

군포를 내기 어려워 도망간 이웃의 군포까지 내라고 했지요.

그런데 영조임금께서 군포를 1필로 내라고 했으니 백성들의 생활도 안정되어 갑니다.

또 모내기 법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단위면적당 쌀 생산량이 증가하여

쌀을 많이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영조는 첫 번째 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효장세자인데 안타깝게도 일찍 죽었습니다.

그러다가 영조 나이 42세에 드디어 아들을 보았습니다.

당시 42세이면 노인층에 속하는 나이였으므로, 

아주 늦게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뛸 듯이 기뻐하며 그 아들에게 온갖 정성을 쏟습니다.

어릴 때부터 영특하여 아버지 영조를 흐뭇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커가면서 공부보다는 무예에 더 관심을 갖게 됩니다.

영조는 세자가 무예에 많은 관심을 갖는 것에 마땅찮은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붕당 정치 속에서 임금이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데,

세자가 공부를 멀리하고 있으니,

아버지 영조의 불만과 실망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그러다가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켜 봅니다. 

대리청정을 하는 사도세자는 위엄있게 정치를 잘 합니다.

사도세자가 노론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치를 하고 있는 모습에 슬슬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대리청정은 사도세자와 영조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정치를 잘하면 노론의 견제를 받고, 정치를 못하면 아버지 영조의 질책이 뒤따랐으니까요.

아버지 영조는 계속 사도세자의 잘못을 꾸짖습니다.

그러자 세자는 영조에 대한 두려움이 생깁니다. 마음의 병이 생긴 것입니다.

아버지 문안을 하러 가는 것이 너무 싫어집니다.

그런데 어느날 너무 아파서 문안을 안가니 너무 좋은 겁니다.


그래서 사도세자는 계속 꾀병이나 다른 이유를 대며 문안을 가지 않습니다.

상궁들이 입을 입혀 주면 옷을 벗어버립니다. 그 옷을 입고 영조에게 문안을 가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다가 상궁이나 내시들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관서지방 기행 등 세자의 비행을 나중에는 영조도 알게 됩니다.

나중에는 친어머니인 영빈이씨가 사도세자를 벌주어야 한다고 영조에게 주청합니다.

사도세자가 동궁에서 칼을 들고 영조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영조에게 전한 것입니다.

세자의 비리를 고발한 나경언의 고변도 영조를 분노하게 만듭니다.

이미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도 똑똑하고, 사도세자는 정신질환 등으로 가망없다고 생각한

영조는 사도세자 스스로 자결하라고 합니다.

말을 따르지 않자 뒤주에 가둬 자신의 아들을 죽게 만듭니다.

 영조가 스스로 아들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정황이 너무 안타깝고,

 너무 아픈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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