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산 김원봉 독립유공자 서훈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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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 김원봉


약산 김원봉은 1919년 의열단을 조직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를 썼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국무위원

해방 이후에는 월북하여 중앙인민위원,

군사부장을 역임했다.


평생을 독립운동 운동을 하였지만

남북 모두 그를 원하지 않은 것 같다.

정부에서 김원봉에게 서훈을 주는 것에 대해

찬반 논란이 뜨겁다.


일제가 두려워하고,

김구보다 현상금이 더 높았다는

약산 김원봉(현상금 320억원)


친일파 암살,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주요기관 폭파를 주도했다.

그래서 친일파와 일제는 김원봉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독립운동을 했지만

그는 1948년 월북하여 북한에서

큰 역할을 하다가 결국 숙청 당한다.


월북한 이유로는

노덕술의 고문과 뺨을 맞은 비통함,

자신을 음해하고 죽이려는 위협,

여운형이 죽임을 당한 것 등 다양한 설이 있다.


특히 노덕술은 일제 치하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검거한 악덕 경찰이었다.

그런데 독립된 한국에서

일제에 빌붙었던 악질 경찰이

자신을 뺨을 때리며 고문한 것에

너무나 분하여 꺼이꺼이 울었다고 한다.


김원봉은 현재 독립유공자 명단에는 없다.

누구보다 더 열심히 독립운동을 했지만

북한으로 월북한 사실때문에 독립유공자 명단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는 약산 김원봉 역을 맡아

열연하였다.

솔직히 나는 암살을 보기 전에는 김원봉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영화 관람 후 집에 와서 김원봉에 대해 찾아보니

독립을 위해 여러가지 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왜 월북했을까?

월북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였는지,

아니면 원래 공산주의자였는지는

나는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월북해서도 6.25남침을 반대했다는 것과

그로 인해 차츰 김일성의 미움을 사서

숙청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으로 월북했어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다는 것 같다.


정부는 국민 의견을 경청하여

김원봉에 대한 독립유공자 결정 여부를

매듭지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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