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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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무어의 엄청난 발견>

1860

프랑스 식물학자, 박물학자인 앙리무어가 캄보디아를 찾아옵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찾아온 이곳에는 프랑스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동식물들이 있어 앙리무어는 연구의 성과를 낼 수 있어  큰 기대를 하고 옵니다. 그렇게 찾아온 그가 어마어마한 발견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밀림속에 숨겨져 있던 도시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 도시가 현재 캄보디아의 중요 관광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발견을 했는지 알아볼까요?

앙리무어는 동식물연구를 위해 캄보디아의 현지인을 고용하여 밀림탐사를 떠납니다. 밀림 속에서 다양한 동식물을 관찰하며 탐험하던 그는 연신 감탄을 쏟아냅니다. 탐험을 하다보니 밀림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게 됩니다. 어느 순간 캄보디아 현지인들이 더이상 밀림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합니다.

"왜 더이상 들어가지 않으려 합니까?" 

앙리무어가 이렇게 물어보자, 현지인들은 

"여기는 수백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머리가 일곱개인 뱀을 신으로 모시던 때 한 왕족이 밀림 속에 화려하고 거대한 도시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신을 잘 모셨습니다. 그런데 왕족들이 반역을 모의해서 신에게 도전을 합니다. 이에 엄청나게 화가 난 신은 큰 저주를 내립니다. 그 저주 때문에 도시는 밀림으로 뒤덮여져 도시는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사람들과 신에게 도전한 왕족들은 그후 유령이 되어 밀림속을 떠돌게 되었습니다. 그 유령이 이 밀림속에서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들어가면 큰일 납니다. 실제로 이곳에 다녀온 사람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밀림 속을 유령도시라고 합니다. 유령이 나타나고 뱀신에게 홀리면 정신이 나가고 죽게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못들어가니 집에 가겠습니다."

"돈을 더 줄테니 함께 더 들어가서 연구해 봅시다." 

앙리무어는 유령도시니 뱀신이니 이런것이 허무맹랑한 소리라 여기고 더 깊은 밀림 속으로 들어갑니다. 얼마나 더 갔을까? 뭔가 이상한 기운이 드는 것 같습니다. 

"으악!!!"

 현지인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갑니다. 뭔일인가 하고 앙리무어는 앞을 바라봅니다. 그곳에는 뱀의 모양을 그려놓은 조각들이 보입니다. 이걸 보고 현지인들은 뱀신이 나타난 줄 알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럼, 그렇지. 뱀신이 어디있어? 유령도시는 또 뭐야?"

이렇게 생각하며 앙리무어는 더 깊이 더 깊은 밀림 속으로 탐험을 합니다. 탐험에 탐험을 한 그는 드디어 어떤 유령같은 건물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그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저게 뭔가? 저게 정녕 유령도시인가? 어떻게 이런 밀림 속에 저런 건물들이 있을까?"

놀라고 흥분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좀더 가까이 가서 연구를 합니다. 그림도 그리고 황홀한 건축물에 넋을 잃기도 하고...... 그렇게 앙리무어는 밀림 속에서 엄청난 발견을 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무사히 밀림 속을 나와 마을로 와서 그의 조국 프랑스로 돌아갑니다. 그때부터 앙리무어는 이상한 이야기를 중얼거립니다. 캄보디아 밀림 속에는 어마어마한 도시가 있다는 둥 그리스, 로마 건축물과 버금가는 것이 밀림 속에 있다는 둥, 빨리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가야 한다는 둥 이렇게 계속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동양의 작은 나라이며 후진국, 그것도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밀림 속에 거대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는 사실을 누가 믿겠습니까? 사람들은 앙리무어가 드디어 뱀신에 홀려 미친 것이 아닌가? 유령도시에서 유령의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습니다. 앙리무어가 아무리 밀림 속에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혹시 그런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면 벌써 발견이 되었을 것 아니냐 하며 앙리무어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다가 1년 정도 지난 후 앙리는 불행하게도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하게 됩니다. '멀쩡했던 사람이 밀림 속 유령도시에 갔다오더니 진짜 유령에 홀려 죽은 것이 아닌가?' 그렇게 사람들은 생각하였습니다.

앙리가 젊은 나이에 그렇게 허망하게 죽은 후 그의 부인과 동생은 앙리무어가 캄보디아의 밀림 속에서 보고 그렸던 그림과 글을 모아 <캄보디아 탐험>이란 책을 출간합니다. 당연히 그 책은 사람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합니다. 그러던 1866년 프랑스의 한 도서관에서 우연히 앙리가 쓴 책을 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해군 장교인 루이 들라포르트였습니다.

책 내용 중 그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문장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다음 문장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캄보디아 밀림 속에 솔로몬의 신전에 버금가고 미켈란젤로가 세운 것 같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는 사실이다.>

루이 들라포르트는 앙리무어의 책을 따라 밀림을 탐험하여 거대한 도시와 위대한 건축물 앙코르와트를 발견하게 됩니다.


<수리아바르만 2세>

크메르제국의 제18대 왕으로 앙코르와트의 건설자인 수리아바르만 2세. 그는 12세기 초 현재 태국 롭부리 지방에서 왕족으로 태어났으나 왕이 되기 희박했던 젊은이였다. 당시 왕위 계승 결정권은 브라만 계급의 원로회의에서 결정하였다. 수리아바르만 2세는 매우 용감하고 지략이 뛰어났다. 이런 젊은이를 눈여겨 본 사람이 바로 왕위 계승 결정권을 갖고 있던 디바카라판티타(브라만 승려)였다. 이 사람은 브라만 계급에서도 권위있던 사람이었다.

1113년 당시 왕은 다닌드라바르만 1세였다. 수리아바르만 2세의 백부였다. 다닌드라바르만 1세 재위 당시 크메르제국은 몹시 혼란한 사회였다. 다닌드라바르만 1세는 본디 승려였으며 시문을 좋아하고 왕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노년에 억지로 추대하여 왕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당시 혼란한 사회를 수습할 능력이 없었다.

결국 왕위 계승을 결정했던 브라만들은 당시 무능한 다닌드라바르만을 몰아내고자 야망넘치는 수리아바르만 2세를 선택한다.

그들은 쿠테타를 통해 수리아바르만 2세를 왕위를 올린다. 이때 그의 나이가 17세이다.

여세를 몰아 다닌드라 가문을 몰아내고 1119년 마침내 크메르 제국의 통일 군주가 된다.


<앙코르와트의 건설>

크메르 제국은 오랫동안 오늘날 시엠립에 해당하는 앙코르를 도읍지로 하여 발전해 왔습니다. 하지만 크메르 제국의 성지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시엠립 북동쪽으로 약 40KM정도 떨어진 프놈 쿨렌산맥의 쿨렌산입니다. 이 곳은 802년 크메르 제국이 앙코르 시대를 연 최초의 왕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왕위에 오른 군주는 이곳을 순례하며 선대왕의 권력을 승계했다는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했습니다.

또 쿨렌 산은 종교적으로도 신성시됩니다. 이 당시 종교는 인도에서 들어온 힌두교였고 크메르 왕들은 힌두 최고의 신인 시바를 신봉했습니다. 그리하여 쿨렌산 크발스피앙에는 천여 개의 물속 링가가 있습니다. 링가는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요니를 받침대로 해서 그 위에 원통형의 조각을 올려 고정시켰습니다. 링가는 힌두교 시바신의 성기를 상징하고, 사람들은 링가를 생명의 근원이라 믿었다. 그러니 상류에 위치한 쿨렌산 크발스피앙에 링가를 만들어 생명의 근원과 신의 축복이 물길을 타고 앙코르까지 흘러오도록 한 것입니다.

크메르 제국의 왕들은 재임기에 1~2개의 사원을 건설하였습니다. 시바신의 권위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수리아바르만 2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종교를 개혁하고 국정을 쇄신하고자 또 다른 힌두교의 신 비슈누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왕궁 근처에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사원을 건설하기로 결정합니다. 그 건물이 바로 앙코르와트입니다.

앙코르와트의 석재들은 어디에서 가져온 것일까요? 바로 40km떨어진 성지인 쿨렌 산에서 가져왔습니다.

코끼리와 인력으로 수많은 석재들을 옮긴 후 조각하여 쌓은 앙코르와트. 세계 제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앙코르와트

동서로 약 1500미터남북으로 약 1300m에 달하는 땅위에 7톤짜리 기둥이 1800개, 돌로 된 방이 260개가 있는 정말 믿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건축기술로 지었습니다 

12세기 동남아시아의 작은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는지 신비로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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