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기념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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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기념관 개관


1970년 11월 13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온 몸을 사르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것을

목놓아 외치다가 세상을 떠났다.


한국의 노동운동사에서 빠질 수 없는

전태일은 봉제노동자로 일하면서

당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노력하였다.

환기장치도 없는 곳에서

봉제노동을 하루 14시간씩 하면서

폐병 등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린 소녀들은 시다(보조노동자)라고 불리웠는데

장시간 저임금에 내몰려 있었다.


이런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근로기준법을 당시 일하던

평화시장 노동자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업주들은  전태일을 해고하고,

평화시장에서 더이상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하였지만

행정기관, 경찰, 업주들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방법인 분신을 생각하였다.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들은 기계가 아니다>

라고 외치며 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하였다.


병원으로 옮겼지만 그는 어머니께

<내다 못다 이룬 것을 어머니께서 이루어 주세요.>

라고 말하며 생을 마감하였다.


이후 전태일은 노동운동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도 아들의 못다 이룬 꿈을

펼치기 위해 여러가지로 노력을 하였다.


이제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던 평화시장 주변 청계천로에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이 정식 개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을 하며 먹고 산다.

요즘은 노동자들의 권리가 많이 신장되었다.

그것이 바로 전태일 열사의 희생 덕분이 아닌가 싶다.


노동자들의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애쓰다

짧은 생을 살다 간

전태일 열사의 발자취를 이곳에서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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