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와 대항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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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와 대항해 시대

후추는 계피(시나몬), 정향과 더불어 세계 제 3대 향신료 중의 하나로 인도 말라바가 원산지입니다. 

설렁탕에 파와 후추를 넣어 먹으면 후추의 맵고 쌉쌀한 맛이 설렁탕의 맛을 더 좋게 만들어 줍니다. 

선사시대 때부터 사용해 온 후추는 실물화폐 기능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600여년전만해도 후추는 금값에 맞먹어 블랙 골드라고 불리웠습니다.

특히 인도 후추는 천국의 알갱이라고 불리워질 정도로 귀했습니다.

유럽 상인들이 왜 후추를 소중히 여겼을까요?

그건 유럽 사람들이 잘 먹는 육류와 관련이 깊습니다.

당시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고기를 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은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습니다. 

이때 후추는 고기의 부패를 막아주고, 육류 특히 양고기의 누린내를 없애주며,

매콤한 맛을 내기 때문에 유럽 사람들이 후추 맛에 열광하였습니다.

후추 소비는 많은데 공급이 딸리니 후추 가격은 원산지의 몇 십배나 되었습니다.

육로를 통해 인도에서 한번 후추를 가져오면 부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동방 무역의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제국에게 점령당했습니다. 

이슬람 세력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이제는 유럽 상인들이 지중해와 육로를 통해서는 후추를 구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개척한 것이 해상 교통로입니다. 

이슬람 세력에 막혀 있으니 해상 항로 개척을 위해 열을 올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먼저 항로 개척을 위해 뛰어든 나라는 포르투갈입니다.

자원도 변변하지 않았던 포르투갈은 바다에 승부를 걸은 것입니다.

1487년 3척의 배로 항해를 시작한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는 1488년 아프리카 최남단에 도착합니다. 

이후 1497년 바스코 다 가마는 희망봉(케이프타운)을 돌아 인도항로를 개척합니다.

인도 캘리컷에 도착하여 인도 후추를 가지고 와 수십 배의 이득을 봅니다.

인도 항로 개척은 그동안 지중해 무역 중심에서 대서양으로 무역의 중심이 이동하는 계기가 됩니다. 

후추 무역으로 막대한 이득을 보자 동아시아로 계속 진출한 포르투갈은 

일본까지 표류해 가서 조총 제조법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포르투갈에 자극을 받은 이웃나라 스페인 왕실은 콜럼버스가 항해하는데 후원자로 나섰습니다. 

스페인 왕실의 지원에 힘입어 콜럼버스는 항해를 계속하여 지금의 산살바도르 지역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이 곳이 죽을 때까지 인도로 잘못 알아 서인도제도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마젤란도 항해를 하다가 필리핀에서 원주민과의 전투로 목숨을 잃었지만,

그의 선원들이 항해를 성공하여 세계일주를 성공하였습니다. 

마젤란의 세계 일주로 지구는 둥글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마젤란 일행은 세계 일주하면서 향신료를 배에 가득 실고 와

세계 일주하는데 쓰인 비용을 제하고도 막대한 이득을 보았습니다.

그야말로 항해에 성공하여 물건을 싣고 오기만 하면 엄청난 이익을 얻는 대박산업이었습니다.

그러니 너도나도 신대륙을 향해 배를 띄우고 신대륙의 향신료나 원료를 얻어 오고자 하였습니다. 

대항해 시대로 세계 역사를 바꾼 이 모든 것이 블랙골드, 후추 쟁탈전에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사용했을까요?

기록에는 고려시대에 원나라 상인들이 후추를 가지고 와서 우리나라에서는 호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호박, 호주머니(호랑), 호도 등 오랑캐 호가 붙은 것은 중국에서 전래된 것입니다. 

호초는 나중에 후추라고 불리워졌으며 

조선 중기 일본 사신이 연회 중 후추를 뿌리자 여인들이 

그것을 줍느라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고 징비록에 적혀 있습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설렁탕에 후추와 파를 넣어 한 그릇 뚝딱 먹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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