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푸켓의 대표적 사원 왓 찰롱>

왓 찰롱 사원은 태국 푸켓의 대표적인 사원입니다. 불교를 많이 믿는 태국에서 전통적인 양식에 따라 충실하게 지어진 사원이지요. 푸켓의 여러 사원 중 가장 크고 아름답고 태국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왓 찰롱 사원을 알아보겠습니다.

제가 여기 관광한 날이 워낙 더운 날이라 솔직히 왓 찰롱 사원을 구경하는 것보다 그늘을 찾아 부채질 한 기억이 더 많습니다. 그날은 왜 그렇게 더운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줄기 땀이 저절로 나오더라구요.

앙코르 와트처럼 <왓>은 사원을 뜻하는 말이고 <찰롱>은 지명입니다. 그러니 까 왓 찰롱은 찰롱 지역에 위치한 사원이란 뜻이 되겠습니다. 승려들이 거주하는 중앙 사원이 있구요. 세명의 스님들이 밀랍으로 만들어진 방도 있습니다. 세명의 스님은 루앙 포 참, 루앙 포 차웅, 루앙 포 끄르암 스님입니다. 1876년 광산 노동자로 이주해 온 중국인들이 광산업자의 무리한 요구로 폭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때 루 앙 포참 스님이 부상자들을 치료해주고 폭동을 잘 마무리시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픈 사람들은 루 앙 포참 스님이 계신 왓 찰롱 사원을 찾아 기도도 올리고 복을 기원하는 장소로 인식되게 됩니다.

사람들은 불상에 금박지를 직접 붙이며 복을 기원하기도 합니다. 복을 기원하는 마음은 한국이나 이곳이나 모두 같은 마음인 것 같습니다. 

사원 지붕은 붉은 색(주황색) 계통으로 칠을 하였으며 건물은 금박을 하였는지 황금색이 많습니다. 건축물들 모두 화려한 장식을 하였으며 황금색으로 햇빛에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반바지, 민소매는 사양합니다>

노출이 심한 옷이나 반바지를 입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반바지 복장을 하고 간 저희 집사람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대기하였지요. 불교 사원인 엄숙한 곳이므로 무릎을 덮지 않는 반바지나 민소매티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또 가끔 펑펑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그건 화약 터지는 소리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폭죽이 악운와 잡귀를 물리친다고 믿기에 큰 소리가 나는 폭죽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중앙 사원 바로 앞 빨간 벽돌로 굴뚝처럼 지은 곳에서 폭죽을 터뜨리는데 화약 파편이 여기저기로 튀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폭죽 터뜨리는 것은 중국 사람들과 비슷한 풍습인 것 같습니다.

푸켓은 사시사철 더운 곳입니다. 더위에 약한 사람들은 얼음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꽝꽝 얼은 pet병이라 할지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녹습니다. 계속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으면 조금 무겁더라도 보냉병이 좋습니다. 그리고 햇빛이 강하니 선크림 자주 발라 주십시오.



아름다운 보라카이 해변이...

보라카이와 발리 해변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예전 보라카이 갔던 기억이 떠 오른다. 한밤중에 도착하여 한참을 자동차타고, 배타고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깔리보공항도 기억이 생생하다. 도대체 이게 공항인지 버스대합실인지... 국제공항이 너무 허접해서 웃음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시설 투자 좀 했으면 하는 공항이다.

기사의 내용은 필리핀 보라카이, 인도네시아 발리의 해변에 쓰레기 문제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만큼 위험하다고 한다.

인기 휴양지인 보라카이가 어떻게 이지경까지 되었을까? 지금도 그 하얀색 바다와 모래사장, 그리고 산미구엘 맥주를 마시며 공연하는 것을 관람하며 유유자적하던 것이 생각난다. 그렇게 아름다워 또 가고 싶은 곳이었는데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있어서 그럴까?

두테리테 대통령이 비상사태 선언할 수도...

필리핀의 두테리테 대통령은 쓰레기 문제로 비상사태를 선언할 수도 있다고 강도높게 대책을 세우라고 이야기 한다. 섬주민과 관광산업 종사자들이 환경정화 작업을 시작하지 않으면 보라카이의 관광산업을 중단시키겠다고 신속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 보라카이 관광업체들이 바짝 긴장하고 대책을 세울 것 같다. 그리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환경교육 실시 및 관광객들의 몰지각한 쓰레기 투기 행위가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발리도 쓰레기 문제 심각...

발리도 마찬가지로 각종 플라스틱 병, 비닐 등 쓰레기가 뒤덮인 곳에서 물고기들이 그 사이를 헤엄쳐 다니고 있다고 한다. 발리 쓰레기도 발리에서 버린 것과 먼 바다에서 흘러 들어온 것 등이 아름다운 해변의 경관을 해치고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발리에도 뭔가 특별한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아름다운 우리 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쓰레기 재활용을 위한 분리 수거,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관광지에서는 자기 쓰레기 집으로 가져가기 등 생활속에서 작은것부터 실천하여 모두 환경지킴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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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영국 시내교통 이용시 사용하는 오이스터(Oyster Card)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1월 12일부터 영국 여행을 하고, 19일 체코 프라하로 갔지요.
문제는 영국 런던에서 딸이 2층버스를 처음 보고 너무 타고 싶어하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눈앞에서 이층버스를 보고 신기했는가 봅니다.

2층버스 지나갈 때 찰칵


그런데 우리들은 이미 여행 스케줄이 있고, 또 현지 가이드와 2번의 여행이 예정되어 있어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18일에 한 곳을 가지 않고, 버스를 타기 위해 가까운 워털루 역에서 오이스터 카드를 샀습니다.
보증금 5파운드, 충전금 5파운드 총 10파운드 입니다.
4인 가족이니 40파운드가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버스를 타고 런던탑으로 가려고 올라 탔으나 아! 이런 버스를 잘못타는 바람에 반대편으로 가더라구요.
그래도 일단 탄 버스이니 2층으로 올라가 맨 앞좌석에 앉아 딸에게 "기분 어떠니?"라고 물으니 좋다고 신기하다고 하며 좋아하더라구요. 그런데 버스는 자꾸 반대편으로 가니 어쩔 수 없이 몇 정거장 간 다음에 내렸지요.
그곳에서 우버 불러서 런던탑으로 관광 잘 했습니다.

런던탑의 건물들



런던탑에서 바라본 타워브릿지


런던 타워는 1066년에 착공한 건물로 1100년부터는 주로 귀족이나 왕족들을 가두는 감옥이나 사형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구요.
입장료는 60인가 70파운드 들어간 것 같습니다.(4인가족)

그 다음날 우리 가족은 체코로 넘어가기 위해 아침부터 짐을 다시 정리하고, 오이스터 카드 환급받으려고 워털루 역으로 갔습니다. 보증금 20파운드와 사용하지 않은 충전금 12파운드 총 32파운드를 환급하려고 카드를 티켓머신에 댔는데 환급 관련 로고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해도 안되어 옆에 있는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하루가 지나야 환급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아! 이런....여행 책자에는 환급받을 수 있다고만 나왔지 24시간 지나야 환급받을 수 있다는 말은 없어서 당연히 되는 줄 알았는데...비행기 시간에 맞춰 가려면 우버 타고 빨리 공항으로 가야하는데....
어쩔 수 없이 기념으로 가져와 버렸습니다.

오이스터 카드 4장


혹시 영국에서 오이스터 카드를 사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실 계획이 있으신 분은 환급받을 수 있도록 미리 구입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영국은 너무 좋았습니다. 물가가 다소 비싼 것과 우버 값도 조금 비싼 것이 흠이지만 런던은 또 가고 싶네요. 그때 오이스터 카드 사용할까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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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교

프라하는 보헤미아 왕국부터 약 1000년 넘게 이어진 체코의 수도로 중세 건축물이 잘 보존된 도시로 모차르트가 매우 사랑했던 도시라고 합니다. 또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지요. 

신성로마제국은 독일오스트리아, 체코 등 유럽 중앙의 큰 나라였습니다이렇게 큰 나라의 수도를 카렐 4세가 프라하로 정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프라하의 시민들은 아직도 카렐 4세 시대의 프라하를 프라하 역사의 가장 황금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천년의 도시 프라하의 명소 중 하나인 카렐교

블타바 강 위로 프라하 성과 구 시가지를 이어주는 다리인 카렐교를 소개합니다.

 


카렐교는 블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약 500미터넓이 약 10m 정도 되는 중세 시대 석조 다리입니다옛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렐 4세의 이름을 따서 카렐교라고 부릅니다. 1357년 카렐 4세가 만든 다리인데 1402년 바츨라프 4세 때 완공됩니다.

프라하 성과 구 시가지를 이어주는 다리로서 늘 관광객으로 붐비는 다리이니 소매치기 조심해야지요저는 구 시가지 근처에 숙소를 잡았던 관계로 걸어서 얼마 안 걸리는 곳이기에 이곳을 3번 갔네요갈때마다 다리 위에는 거리의 악사예술가동냥하시는 분관광객들 등 늘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동양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사람이더라구요. 한국사람들 엄청나게 많이 옵니다. 아마 도시가 너무 예쁘고 중세적인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그런가 봅니다. 또 드라마에서도 소개가 많이 되어 더 많이 찾는가 봅니다.

 


다리 위에는 조각상이 좌우에 각각 15개씩 모두 30개가 있습니다여러 개의 조각상 중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바로 얀 네포묵(얀 네포무크얀 네포무츠키)의 조각상입니다전설에 의하면 얀 네포묵은 바츨라프 4세의 왕비의 고해 성사를 들었다고 합니다바츨라프 4세는 왕비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왕비가 어떤 내용의 고해 성사를 했는지 알려달라고 합니다하지만 신앙심 깊은 얀 네포묵은 그 청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그러자 왕은 온갖 고문과 협박을 합니다그러다가 왕이 성직자를 죽였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얀 네포묵을 묶어 블타바 강에 던졌습니다죽음으로서 종교적인 신념을 지킨 얀 네포묵.

동판위에 새겨진 강위로 떨어지는 얀 네포묵별을 함께 만지며 소원을 빌면 그 행운을 가져온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소원과 행운을 빌며 만졌는지 그 부분만 맨질맨질하게 변했습니다.


 이제 구시가지 앞에 이르는 교탑앞에 이릅니다이곳은 30년 전쟁에서 스웨덴 군대를 막아냈던 격전지라고 합니다이 곳에서 왼쪽을 보면 동상이 보입니다바로 카렐 4세의 동상입니다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재위기간동안 프라하를 유럽의 중심도시로 탈바꿈 시킨 인물이지요이곳에서 프라하 성과 블타바 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모두 예술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교탑 주위에는 제복을 입고 유인물을 나눠 주는 사람들(흑인들이 많지요)이 있던데 이 사람들은 유람선 탑승을 안내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탑 바로 밑에 유람선이 있으니 유람선도 한번 타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카렐교 교탑>


<카렐 4세 동상>


<카렐교 교탑과 카렐 4세 동상을 한꺼번에 찰칵>


<카렐 4세 동상 바로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프라하 성, 블타바 강, 카렐교 모두 담을 수 있네요.>


1.25.오늘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탐방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요기를 하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제가 묵고 있던 숙소는 워터루 역 근처의 아파트로 템즈강을 건너서 약 30분정도 걸어가면 나오더라구요.
구글 지도를 켜고 천천히 영국 런던의 경관을 구경하며 걸어갔습니다. 걸어가는데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 조깅하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조깅하는 사람들 대부분 운동복을 바르게 갖춰 입고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이 육상 종목에서 그래도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강국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더라구요.
템즈강의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지나가다 보니 공사중인 빅벤도 보이고 공원에는 처칠 등 여러 위인들의 동상들이 보였습니다. 동상들이 있는 조그만 공원 바로 앞에 드디어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 런던에 위치한 성공회 성당으로 역대 왕들의 대관식, 결혼식, 장례식 등이 열리는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원래는 카톨릭 성당으로 지어졌으나 종교 개혁기를 거쳐 성공회 성당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장례식과 그 아들인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이 열린 장소로도 유명하지요.
또 우리와는 맞지 않게 시신을 성당 내부에 안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당 곳곳에 여러 영국 왕들과 왕비, 과학자 등의 무덤이 있습니다. 시신을 자꾸 안치하다보니 실내가 조금 좁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상적인 이야기 중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1세의 무덤은 전해오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피의 메리1세가 아니라 스코틀랜드 메리 1세입니다.)
잉글랜드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1세는 왕위 계승과 관련하여 서로 경계하는 사이였습니다. 메리 1세는 결혼도 순탄하지 않았으며 급기야 반란군에게까지 패하여 폐위당하고 잉글랜드 엘리자베스 1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요. 하지만 경계의 눈초리를 하고 있던 엘리자베스 1세는 메리 1세를 칼라일 성에 감금하고 반역죄로 몰아 처형하였습니다. 그리고 영국 중부에 있는 피터버러 성당에 묻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엘리자베스 1세가 자식이 없는 상태로 죽자 메리의 아들 제임스1세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통합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피터버러 성당에 묻혀 있던 어머니 메리 1세를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이장하여 엘리자베스 1세보다 훨씬 크고 아름답게 대리석으로 무덤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이 사원의 아쉬운 점은 실내에서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사원의 정문 바로 앞에서 우버를 부르면 10여분 내로 도착하니 참고하세요.

<앙리무어의 엄청난 발견>

1860

프랑스 식물학자, 박물학자인 앙리무어가 캄보디아를 찾아옵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찾아온 이곳에는 프랑스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동식물들이 있어 앙리무어는 연구의 성과를 낼 수 있어  큰 기대를 하고 옵니다. 그렇게 찾아온 그가 어마어마한 발견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밀림속에 숨겨져 있던 도시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 도시가 현재 캄보디아의 중요 관광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발견을 했는지 알아볼까요?

앙리무어는 동식물연구를 위해 캄보디아의 현지인을 고용하여 밀림탐사를 떠납니다. 밀림 속에서 다양한 동식물을 관찰하며 탐험하던 그는 연신 감탄을 쏟아냅니다. 탐험을 하다보니 밀림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게 됩니다. 어느 순간 캄보디아 현지인들이 더이상 밀림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합니다.

"왜 더이상 들어가지 않으려 합니까?" 

앙리무어가 이렇게 물어보자, 현지인들은 

"여기는 수백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머리가 일곱개인 뱀을 신으로 모시던 때 한 왕족이 밀림 속에 화려하고 거대한 도시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신을 잘 모셨습니다. 그런데 왕족들이 반역을 모의해서 신에게 도전을 합니다. 이에 엄청나게 화가 난 신은 큰 저주를 내립니다. 그 저주 때문에 도시는 밀림으로 뒤덮여져 도시는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사람들과 신에게 도전한 왕족들은 그후 유령이 되어 밀림속을 떠돌게 되었습니다. 그 유령이 이 밀림속에서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들어가면 큰일 납니다. 실제로 이곳에 다녀온 사람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밀림 속을 유령도시라고 합니다. 유령이 나타나고 뱀신에게 홀리면 정신이 나가고 죽게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못들어가니 집에 가겠습니다."

"돈을 더 줄테니 함께 더 들어가서 연구해 봅시다." 

앙리무어는 유령도시니 뱀신이니 이런것이 허무맹랑한 소리라 여기고 더 깊은 밀림 속으로 들어갑니다. 얼마나 더 갔을까? 뭔가 이상한 기운이 드는 것 같습니다. 

"으악!!!"

 현지인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갑니다. 뭔일인가 하고 앙리무어는 앞을 바라봅니다. 그곳에는 뱀의 모양을 그려놓은 조각들이 보입니다. 이걸 보고 현지인들은 뱀신이 나타난 줄 알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럼, 그렇지. 뱀신이 어디있어? 유령도시는 또 뭐야?"

이렇게 생각하며 앙리무어는 더 깊이 더 깊은 밀림 속으로 탐험을 합니다. 탐험에 탐험을 한 그는 드디어 어떤 유령같은 건물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그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저게 뭔가? 저게 정녕 유령도시인가? 어떻게 이런 밀림 속에 저런 건물들이 있을까?"

놀라고 흥분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좀더 가까이 가서 연구를 합니다. 그림도 그리고 황홀한 건축물에 넋을 잃기도 하고...... 그렇게 앙리무어는 밀림 속에서 엄청난 발견을 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무사히 밀림 속을 나와 마을로 와서 그의 조국 프랑스로 돌아갑니다. 그때부터 앙리무어는 이상한 이야기를 중얼거립니다. 캄보디아 밀림 속에는 어마어마한 도시가 있다는 둥 그리스, 로마 건축물과 버금가는 것이 밀림 속에 있다는 둥, 빨리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가야 한다는 둥 이렇게 계속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동양의 작은 나라이며 후진국, 그것도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밀림 속에 거대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는 사실을 누가 믿겠습니까? 사람들은 앙리무어가 드디어 뱀신에 홀려 미친 것이 아닌가? 유령도시에서 유령의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습니다. 앙리무어가 아무리 밀림 속에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혹시 그런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면 벌써 발견이 되었을 것 아니냐 하며 앙리무어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다가 1년 정도 지난 후 앙리는 불행하게도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하게 됩니다. '멀쩡했던 사람이 밀림 속 유령도시에 갔다오더니 진짜 유령에 홀려 죽은 것이 아닌가?' 그렇게 사람들은 생각하였습니다.

앙리가 젊은 나이에 그렇게 허망하게 죽은 후 그의 부인과 동생은 앙리무어가 캄보디아의 밀림 속에서 보고 그렸던 그림과 글을 모아 <캄보디아 탐험>이란 책을 출간합니다. 당연히 그 책은 사람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합니다. 그러던 1866년 프랑스의 한 도서관에서 우연히 앙리가 쓴 책을 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해군 장교인 루이 들라포르트였습니다.

책 내용 중 그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문장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다음 문장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캄보디아 밀림 속에 솔로몬의 신전에 버금가고 미켈란젤로가 세운 것 같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는 사실이다.>

루이 들라포르트는 앙리무어의 책을 따라 밀림을 탐험하여 거대한 도시와 위대한 건축물 앙코르와트를 발견하게 됩니다.


<수리아바르만 2세>

크메르제국의 제18대 왕으로 앙코르와트의 건설자인 수리아바르만 2세. 그는 12세기 초 현재 태국 롭부리 지방에서 왕족으로 태어났으나 왕이 되기 희박했던 젊은이였다. 당시 왕위 계승 결정권은 브라만 계급의 원로회의에서 결정하였다. 수리아바르만 2세는 매우 용감하고 지략이 뛰어났다. 이런 젊은이를 눈여겨 본 사람이 바로 왕위 계승 결정권을 갖고 있던 디바카라판티타(브라만 승려)였다. 이 사람은 브라만 계급에서도 권위있던 사람이었다.

1113년 당시 왕은 다닌드라바르만 1세였다. 수리아바르만 2세의 백부였다. 다닌드라바르만 1세 재위 당시 크메르제국은 몹시 혼란한 사회였다. 다닌드라바르만 1세는 본디 승려였으며 시문을 좋아하고 왕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노년에 억지로 추대하여 왕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당시 혼란한 사회를 수습할 능력이 없었다.

결국 왕위 계승을 결정했던 브라만들은 당시 무능한 다닌드라바르만을 몰아내고자 야망넘치는 수리아바르만 2세를 선택한다.

그들은 쿠테타를 통해 수리아바르만 2세를 왕위를 올린다. 이때 그의 나이가 17세이다.

여세를 몰아 다닌드라 가문을 몰아내고 1119년 마침내 크메르 제국의 통일 군주가 된다.


<앙코르와트의 건설>

크메르 제국은 오랫동안 오늘날 시엠립에 해당하는 앙코르를 도읍지로 하여 발전해 왔습니다. 하지만 크메르 제국의 성지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시엠립 북동쪽으로 약 40KM정도 떨어진 프놈 쿨렌산맥의 쿨렌산입니다. 이 곳은 802년 크메르 제국이 앙코르 시대를 연 최초의 왕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왕위에 오른 군주는 이곳을 순례하며 선대왕의 권력을 승계했다는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했습니다.

또 쿨렌 산은 종교적으로도 신성시됩니다. 이 당시 종교는 인도에서 들어온 힌두교였고 크메르 왕들은 힌두 최고의 신인 시바를 신봉했습니다. 그리하여 쿨렌산 크발스피앙에는 천여 개의 물속 링가가 있습니다. 링가는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요니를 받침대로 해서 그 위에 원통형의 조각을 올려 고정시켰습니다. 링가는 힌두교 시바신의 성기를 상징하고, 사람들은 링가를 생명의 근원이라 믿었다. 그러니 상류에 위치한 쿨렌산 크발스피앙에 링가를 만들어 생명의 근원과 신의 축복이 물길을 타고 앙코르까지 흘러오도록 한 것입니다.

크메르 제국의 왕들은 재임기에 1~2개의 사원을 건설하였습니다. 시바신의 권위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수리아바르만 2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종교를 개혁하고 국정을 쇄신하고자 또 다른 힌두교의 신 비슈누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왕궁 근처에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사원을 건설하기로 결정합니다. 그 건물이 바로 앙코르와트입니다.

앙코르와트의 석재들은 어디에서 가져온 것일까요? 바로 40km떨어진 성지인 쿨렌 산에서 가져왔습니다.

코끼리와 인력으로 수많은 석재들을 옮긴 후 조각하여 쌓은 앙코르와트. 세계 제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앙코르와트

동서로 약 1500미터남북으로 약 1300m에 달하는 땅위에 7톤짜리 기둥이 1800개, 돌로 된 방이 260개가 있는 정말 믿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건축기술로 지었습니다 

12세기 동남아시아의 작은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는지 신비로울 뿐입니다.


오후에 아산온천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이순신장군님 묘소를 가 보았습니다.
일본의 침입에서 나라를 구하신 이순신 장군님의 묘소를 보았는데
햇빛이 잘 들어오는 명당 위치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묘지 뒤에는 소나무들이 이순신 장군님을 호위하는 듯이 서 있었습니다.

노량해전 중 전사하여 아산군 금성산에 모셨다가 광해 6년 이곳으셨다는 안내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덕수 이씨 충무공 가족묘소 안내도가 있어서 자세히 읽어보니 이곳에 아버지 이정, 충무공의 형님과 아우들이 함께 영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충무공 묘소만 보고 내려왔는데 조금 아쉽더라구요.
바람만 세게 불지 않았다면 다시 올라가보고 싶었지만 너무 추워서 밑에서만 쳐다 보았습니다. 

사적 112호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을 비석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정조대왕 신도비도 찍어 보았습니다. 정조대왕이 이순신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직접 지은 것을 1979년에 다시 만든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곳은 원래 사람이 별로 없는지 너무 한적합니다.
바람부는 날씨라 그런지 너무 사람이 없어 쓸쓸하기까지 합니다.

묘지 뒤쪽으로 산책 코스가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 묘소 둘레를 크게 돌면 소나무 향기로 힐링하며 산책할 수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미리 준비하고 훈련하고 나라를 구하신 이순신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발길을 돌립니다. 이곳에서 약 8km정도 떨어진 곳에는 현충사가 있으니 관람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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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시국 가이드 투어

베드로 대성당 입구의 모습-너무 큰 규모의 성당에 놀랐습니다.


베드로 대성당 돔위를 올라가서 바티칸시국의 모습을 찍었습니다. 가히 예술적인 나라입니다.

계단이 많아 힘들게 힘들게 올라갔는데,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나 상쾌하였습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성모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예전에는 유리가 없었는데 한 관객이 망치를 휘둘러 유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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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폭격

1945213일 

영국, 미국 등 연합군은 엘베 강변의 피렌체’,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리우는 독일의 드레스덴을 폭격하기로 결정합니다.

이곳은 연합군의 폭격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이 몰려 들었던 도시입니다.

또 일설에는 히틀러가 사랑한 도시라서 연합군이 의도적으로 폭파했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중소도시입니다. 이 공습으로 드레스덴 전체 건물의 90%가 파괴되었습니다.

이를 드레스덴 폭격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폭격의 위력은 어마어마했습니다.


블록버스터는 어디에서 왔을까?

원자폭탄 1개에 맞먹는 폭탄을 퍼부었는데 융단폭격과 블록버스터의 어원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블록버스터는 SF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용어입니다.

많은 제작비와 화려한 컴퓨터그래픽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영화를 흔히 블록버스터라고 하는데 이 말은 드레스덴 폭격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블록버스터의 뜻은 초대형폭탄이란 뜻인데 한 블록을 bust 할 만큼 화력이 센 폭탄을 말하는 것입니다.(bust는 부수다의 뜻)

 

블록버스터급 융단폭격을 실행한 사람은 영국 공군 원수인 아서해리스였습니다.

물론 미국 공군도 함께 공격을 하였습니다.

아서해리스의 전략은 드레스덴 등 여러 독일의 도시를 무차별 폭격으로 독일인들의 공포심을 조장하고 나아가 반란을 일으켜 나치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블록버스터급 융단폭격작전은 여러 차례 진행되어 독일 도시들을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죄 없는 민간인까지 희생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아서해리스에 대한 평가

이에 아서해리스에 대한 평가는 둘로 나뉘어집니다

아서해리스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히틀러의 런던 폭격에 대한 반격이므로 전쟁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옹호합니다.

비판론자들은 전쟁의 승패가 완전히 기울어졌는데 굳이 도시를 폭격하고 민간인을 학살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비판을 합니다.


<성모교회>



-바로 앞에 종교개혁가 루터의 동상이 있습니다. 루터교 교회로서 개신교 교회입니다.

-교회 왼쪽 돌을 보면 드레스덴 폭격으로 검게 그을린 돌을 그대로 재사용하여 재건하였습니다.

-대부분 성당이나 교회는 측면이나 후면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정면에서 파이프오르간이 위치하고 있더라구요. 

-이곳은 바흐가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했던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성모교회 뒤편 지하에는 한국어 메뉴가 있는 식당이 있습니다. 그럭저럭 맛있습니다.



드레스덴 성당



드레스덴 성당의 모습

-루터교의 개신교 교회와 얼마떨어지지 않은 곳에 성당이 있어서 그럴리 없겠지만 신구교간 대립이 혹시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슈탈호프 외벽에 그려진 작센의 베틴가 군주 행렬 


<요하노임과 슈탈호프의 군주의 행렬>

-거리 102m,  높이 9.5m의 거대한 벽화입니다.

벽화라고 해서 그림이라기 보다는 마이센 타일로 만든것인데 약 25000장이 소요되었습니다.

마이센 타일은 일종의 자기입니다. 마이센도자기는 알아주는 명품이지요.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에도 훼손되지 않은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업적이 뛰어난 군주는 말이 앞발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나폴레옹 초상화를 보면 말이 앞발을 높게 들고 있는데 그걸 생각하면 됩니다.)


<젬퍼 오페라하우스>



-1803년에 태어난 건축가 젬퍼가 만든 것을 재건한 것입니다.

-바그너의 초기 음악작품이 이곳에서 시연되었습니다.  바그너와 젬퍼는 절친입니다.


<츠빙거 궁전>

드레스덴에 위치한 바로크 건축의 대표적인 궁전으로 특히 요정의 샘이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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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에 있는 대명리조트에서 1박을 하고 단양 여행 실시

 우선 단양에 제일 유명한 고수동굴부터 출발...

 

고수동굴은 어른 11,000

중고등학생 7,000

초등학생 5,000원의 입장료를 받습니다.

 

동굴에 들어가기 전 우선 고수동굴 방문객 센터에서 동굴 관련 기본 정보를 습득한 후 동굴 탐험을 실시합니다.

 


경사가 있고 계단이 많기 때문에 기초 체력이 있어야 동굴 탐험이 무난합니다.

무릎이 아프거나 연로하신 분은 약간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또 경사가 급한 계단도 많아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들은 무서워 하더라구요.

동굴 안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미리 화장실 갔다가 입장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동굴 탐험 시 장갑을 끼고 앞사람과의 간격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안전에 유의하십시오.

 

천연기념물 256호로 지정된 고수동굴은 석회암 동굴로서 약 200만년전에 생성되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바위들도 많이 있으니 한번 찾아보며 탐험하면 좋습니다.

여름에 들어가면 엄청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겨울에는 따스하다고 합니다.

 

동굴 속의 물방울이 고드름처럼 자란 종유석

물방울이 바닥에 쌓여 솟아오른 석순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면 기둥이 되는데 이것이 석주입니다.

 

고수동굴에서 수호신인 사자바위(아래 사진에 사자바위 있습니다. 사자가 포효하는 듯한...)

종유석과 석순이 만날 듯 말 듯 상태의 사랑바위 등등 볼 것 많은 고수동굴.

 

볼 것 많고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단양으로 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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