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국 말기 괴승 라스푸틴


우리나라 고려 시대에는 신돈이라는 승려가

공민왕의 총애를 받아,

정치를 좌지우지 했던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 제국 말기에도 신돈과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라스푸틴입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리아 사이에는

1남 4녀가 있었습니다.

그중 막내 알렉세이 황태자는

유전병인 혈우병으로 고생하였습니다.

황후의 외할머니인 영국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유전되어

알렉세이 황태자도 혈우병이 있었던 것입니다.


용하다는 의사에게 진찰을 받게 하였지만

나을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때 라스푸틴이 신비의 치료 능력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들였습니다.

신기하게 알렉세이 황태자가 흐르던 피를 멈추게 하여

혈우병의 고통을 줄여 주었습니다.


황후 알렉산드리아는 라스푸틴을

하늘이 보낸 사람이라고 하며

극진하게 대접하였습니다.

라스푸틴은 황제와 황후의 총애를 받게 되자,

직접 내정까지 간섭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니콜라이 2세는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참이라

라스푸틴에게 정치를 맡겨 버렸습니다.


라스푸틴은 음주, 성추문 등 좋지 않은 일들이 무성했으나

황후는 그의 행동을 모두 감싸주었다.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하는데

독일군에게 계속 패하고 만다.

그러자 수세에 몰린 전선을 수습하고자,

니콜라이 2세는 직접 총사령관이 되어 전선을 지휘한다.

이때 라스푸틴은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남부전선을 공략하면 이길 것이라고

하느님께서 계시를 주었다고 말했다.


황제는 그 말을 듣고 모두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남부 전선을 공략했다.

그러나 이 공격으로 러시아 군사력은 붕괴되고,

우크라이나까지 독일군에게 내주고 말았다.

막대한 전비로 국가 재정은 파탄 나고,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이리나 공주의 남편 유스포프 공작 등

귀족들이 그를 살해하고자 하였다.

살해 방법은 라스푸틴을 초대하여

청산가리가 든 음식을 먹여 독살 시키는 방법이었다.


평소 이리나 공주의 미모를 흠모했던 라시푸틴은

초대장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공주의 초대에 응했다.

독이 든 음식이 나오고, 파티가 시작되었다.

라스푸틴은 그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두 시간이 넘게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며 놀았다.

아니,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죽어야 하는데

 끄덕 하지 않는 것이었다.


유스포프는 안되겠다 싶어

권총으로 그를 쏘았다.

그런데도 죽지 않고 유스포프의 멱살을 잡아 당겼다. 

멱살을 뿌리치고 유스포프는

소리를 지르며 도망을 갔다.

라스푸틴은 그를 잡으러 쫓아가는데,

어디선가 또 한방의 권총이 라스푸틴의 어깨를 쐈다.

그리고 라스푸틴을 무자비하게 폭행을 하고,

꽁꽁 묶어 네바 강에 던져버렸다.


독이 든 음식과 권총으로도 죽지 않은

라스푸틴을 강물에 던졌지만

죽었다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런데 며칠 후 그의 시체가 발견되자

유스포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황제는 라스푸틴의 죽음을 슬퍼하며

죽음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하였다.


조사 결과는 더욱 황당하다.

독 때문에 죽은 것도 아니고,

총을 맞고 죽은 것도 아니고,

물에 빠져 죽은 것으로 나타났다.

총은 치명상이었지만, 사인은 익사였던 것이다.


참 불가사의한 인물 <라스푸틴>이다.


그런데 라스푸틴의 이야기는

허구가 가미 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제 개인적인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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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1등급 훈장 추서

3.1절을 맞이하여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는 최고 등급의 서훈이다.


유관순 열사에게 3등급의

<건국훈장 독립장>수여했으나,

이는 유관순 열사의

나라사랑 정신과 공적에 비해

턱없이 낮은 훈격이라고 사람들은 말해왔다.


유관순 열사는 천안 병천면 아오내 장터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16살의 나이로 3.1운동을

주도한 상징적인 인물이다.


국민들도 3.1운동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유관순일 정도로

각인이 되어 있다.

그래서 이번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1등급의 훈장을 추서하게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의미라 할 수 있겠다.


이번 훈장 수여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유족에게 수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충남도와 천안시에서도

이번 결정에 환영의 뜻을 표하며,

유관순 열사의 독립정신,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 등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갈 바를

제시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 유관순 누나라고 배웠다.

그렇지만 우리들끼리

유관순 할머니 아니냐 하고

철모르고 이야기 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한 생각이 든다.

16세의 나이로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는데,

난 그 나이에 뭐했는가?


그리고 혹시라도

독립운동 하신 분들을

다른 의도로 악용되지나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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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과 위징


위징은 당의 황태자 이건성의 휘하에 있으며

후일 당태종인 이세민을 죽여야 한다고

여러 차례 권고했다.


이세민이 이건성을 제거한 현무문의 변 이후

어떤 사람이 위징이

이세민을 제거하려 했다고 고변했다.


이세민은 위징을 불러다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지 호되게 추궁했다.

그러자 위징은 태연하게도

만일 황태자(이건성)가 자신의 말만 들었어도

오늘과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대신들은 이젠 위징은 죽음을 면치 못하겠구나 생각했는데

도리어 이세민은 위징의 당당함과 정직함에 매료되어

그를 간의대부로 임명한다.


어느 날 당태종은 18세가 안되었어도

키가 크고 건장한 남자라면 징집하라고

조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위징에게 하급 기관에 보내라고 했는데

위징은 보내지 않았다.

당태종이 여러 번 이야기해도

위징이 조서를 보내지 않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위징을 불러들어 꾸짖었다.

"위징, 왜 조서 안내려보내? 죽을래?"

"소신은 폐하의 조서에 찬성하지 못합니다.

군대가 아무리 사람이 많으면 뭐합니까?

군대란 얼마나 훈련하고,

지휘하느냐에 따라 강군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연못의 물고기를 잡는다고 물을 다 빼버리면

물고기를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잡을 물고기가 없어집니다.

지금처럼 군사를 징집하면

나중에는 어디에서 병사를

충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당태종을 17여년간을 보필하며

당태종이 듣기 거북할 정도의 간언을

200여차례나 했다고 한다.


위징이 나이들어 병석에 눕자

당태종은 위징을 병문안 갔다.

그자리에서 위징은 태평성대일수록

위태로울 때를 대비하라고

또 태종이 듣기 싫은 간언을 한다.


위징이 죽자 당태종은 묘비에 비문을 친히 썼다.

그리고 그 비문을 깨버렸다.

그동안 심한 잔소리(?)가 생각나서 애꿎은

묘비에 화풀이를 해댄것이다.


이제는 잔소리꾼도 없으니

(방현령은 고구려 원정을 반대)

당태종은 그렇게 정벌하고 싶었던

고구려를 쳐들어간다.

금방 점령할 것 같았던 고구려였는데

양만춘이 버티는 안시성에서

더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참패하고 퇴각한다.


이때 퇴각하면서 한말은

"아, 위징이 살아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하고 장탄식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당나라에 돌아가자마자 한 일이

위징의 묘비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안시성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눈을 하나 잃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고구려 원정으로 병에 오래 시달리다가

죽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현무문의 변>

당태종 이세민이

황태자 이건성과 동생 이원길이

아버지의 후궁들과 은밀한 관계라고

거짓 고변했다.

화가 난 아버지 고조는 두 사람을

궁으로 들어오게 했다.

아버지의 명령으로 궁에 들어오는

황태자와 동생을 현무문에서 죽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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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회항 박창진 사무장

박창진 플라이백

대한항공 사무장에서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된 박창진 사무장이 최근 책을 냈다.

이른바 땅콩회항으로

그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부당행위에 맞서면서

시작된 박창진의 고난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땅콩회항 이후

그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이야기를 담은 책

<플라이 백>을 출간했다.

fly back은 회항이라는 뜻으로

5년전 있었던 땅콩회항 이후의

그의 삶을 주제로 책을 쓴 것이다.


박창진은 원래 대항항공에서 인정받는

우수한 직원이었다.

남보다 빠른 승진을 하였고

다수의 표창도 받았다.

동기들이 노조활동을 해도

그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노조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회사에서 인정받던 박창진은

2014년 땅콩회항으로 완전 뒤바뀐 삶을 살게 된다.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되었지만

새로운 노조인 <직원연대노조>

지부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잘못된 기업 문화에 대해 공익제보하였지만,

회사 내에서는 문제직원으로

찍혀 불이익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갑자기

비행 스케줄을 부당하게 변경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현재 박창진 씨는 회사와 인사상 불이익을 당한 것,

한진 오너일가의 갑질 처벌 등을 위해 싸우고 있다.


한때는 대한항공의 홍보모델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공항장애를 겪으면서도

사회운동을 하는 것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일반인이라면 벌써 대항항공에

두손 두발 들고 나와

신세한탄을 하며 살아갔을텐데...


그리고 사람들은 그에게 묻는다.

2014년 뉴욕공항 비행기로 다시 돌아간다면

조현아에게 똑같이 행동할 것이냐고 묻는다.

그는 그렇게 할 것이다. 라고 대답한다.

대도서관이 말하는 유튜버 성공조건

유튜브로 성공하기

게임광 소년이던 아이는 대학 입학도 포기하고,

e러닝회사에서 미디어를 담당했습니다.

이곳에서 동영상을 편집과 촬영 등 영상제작 기술을 배웠습니다.

나이 서른이 넘은 2010년에 유튜브를 시작하였습니다.

닉네임은 대도서관으로 문명 게임 속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별명을 사용하였습니다.

도서관의 책처럼 세상의 모든 정보와 지식을

재미있게 알려주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가 바로 초등학생들이 꿈꾸는 유튜브의 신 나동현씨입니다.

저도 관심이 있어 유튜브의 신이라는 책도 읽어봤습니다.

책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욕설을 사용하며 방송을 제작했지만,

자신은 욕을 하지 않고 인기를 끌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하였다고 합니다.

건강한 방송을 하며 지금은

한달 유튜브 광고 수익만 5000~600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참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초등학생들의 꿈이 유튜버라는 것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대도서관은 나이는 생각하지 말고,

직장 그만 다닐 생각하지 말고,

일단 시도해보라는 말을 합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차별화된 기획력과 콘셉만 있으면

성공할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자기일을 사랑하면서 주변에 휩쓸리지 말고,

즐거워하는 일을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특히 유튜브 방송이 성공하려면

기획을 잘해야 한다고 합니다.

10분 내외의 영상에 효과적인 정보를 넣고,

지루하지 않게 화면을 구성해야 한다고 합니다.

시청자들이 쉽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우리 집 애도 매일 게임만 하려고 해서

보기도 싫은데

게임하는 것을 너무 나쁘게만

바라보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막상 집에서 게임하고 있으면

너무 헛된 곳에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제 속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게임하는 것을 유튜브에 올려본다고

깝죽(?)거리고 있는데,

이거 참 허락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입니다.


부모의 입장이라 공부도 어느 정도 하고서,

게임이나 유튜브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한 우물만 열심히 파면 성공할 수 있다는

대도서관의 긍정 에너지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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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큐가 고작 43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바보라고 취급 받았고, 저능아로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한번 가르쳐 주면 금방 잊어먹고, 또 공부하면 금방 까먹고...

하나의 사실을 알고자 하면 수없이

반복해서 학습해야만 했습니다.

저능아라는 따돌림,

말도 더듬거리고, 눈도 처지고, 걸음걸이도 부자연스러워 친구들의 

놀림을 받으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라이언의 아버지는 매일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오는 아들에게


 라이언, 친구들의 말을 신경쓰지 말고 무조건 노력하렴.

그러면 그 친구들 못지않게 잘할 수 있을거야.


이렇게 아버지는 아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 격려에 힘입어 아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모님의 극진한 보살핌과 사랑속에서

라이언은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라이언 부모님은 라이언을 특수학교에 보내지 않고 일반학교에 보냈습니다.

일반학교에서는 많이 부족한 라이언을 받아 주려고 하지 않았으나,

부모님은 학교를 어렵게 설득하여 보통 아이들과 공부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라이언은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명문대에 진학하여 

그 어렵다는 미적분에 두각을 나타내어 3년만에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타고난 재능은 1%에 불과하고 노력이 99%라는 것을 증명해낸 라이언...

아무리 재능이 없어도 열성적인 노력은 훌륭한 성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다시 증명해낸 라이언...


지진아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봐 준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라고 말하며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고, 꿈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인 한비야 씨의 책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읽었을 때에는 참 대단한 분이다. 라고만 느껴지고 겉핥기 식으로 책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긴 읽었는데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엊그제 책꽂이에 그 책이 꽃혀져 있어 저도 모르게 펼쳐보았습니다.

어느 한 마을에 어느 아낙이 먹을 것이 없어 풀 같은 것을 끓여서 아이에게 주는 것이었습니다.

꼭 시금치 같이 생겨서 저거라도 먹이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것은 시금치가 아니고 독초라고 합니다.

저 사람이 제 정신이 있는 엄마인가? 라고 생각한 한비야씨는 

이건 독초니 먹이지 말라고 했지요.

그러자 그 엄마는 한비야 씨를 바라보며

"이것을 먹고 죽으나 안먹고 죽으나 마찬가지입니다"

라고 하며 

아이가 저 독초를 먹고 지금 당장 배불리 먹다가 죽는 것이 오히려 굶어 죽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또 한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즐겁게 놀다가 어느 순간 무덤이 한 두개 생기더랍니다.

왜 그런가 알아보니 아이들이 의성콜레라에 전염되어 아이들이 한두명씩 죽어가서 무덤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것은 링거 한병이라는데 당시 우리나라 환율로 800원이면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즐겁게 함께 놀던 아이가 800원 정도가 없어 죽는것입니다.

너무 가혹한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책 내용이 사실 아닌 것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

하지만 분명 어느정도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책을 쓴 것이라고 믿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아이를 굶겨야먄 하는 어머니의 심정, 약이 없어 아이들이 죽는 현실은 사실이니까요.

어느 나라에서는 먹을 것이 풍족하여 음식 쓰레기를 치우는데 골머리를 앓고

어느 나라에서는 먹을 것과 의약품이 없어 죽어 나가는 아픔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조금 관심을 갖고 정기적인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런 도움이 그 아이들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1905년 일본은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정치를 실시합니다.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는데 앞장선 일본의 이토히로부미

그를 1대 통감으로 조선에 파견시킵니다.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고자 헤이그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파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일본은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군대도 해산시킵니다.

이렇게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원흉 이토히로부미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 내립니다. 

그때 이토의 앞에 서서 그를 저격하고 외친 말

꼬레아 우라 - 대한민국 만세


이토히로부미 저격 후 체포되어 러시아 법정이 아닌 일본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첫 공판 후 내려진 판결은

<안중근!!! 사형>

사형이 내려지고 수감생활을 하면서 그는 책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일본인에게 말합니다.

안중근: 사형 집행 날짜를 한 달 늦추어 줄 수 있는가? 꼭 완성하고 싶은 책이 있다.

일본놈: 어찌 한달뿐이겠는가? 몇 달이 걸리더라도 특별히 허가할 것이니 걱정 말라.

시간을 약속 받은 청년 안중근은 항소도 포기한 채 책을 열심히 씁니다.

하지만 약속과는 달리 이제 막 서문과 첫 장을 마친 어느 날

안중근은 일본의 예정되었던 날짜에 사형을 당하고 맙니다.

그날이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였습니다.

그러다가 69년 지난 일본의 국회도서관 자료실의 

수많은 책 더미 속에서 발견된 안중근의 미완성 저서 동양평화론

-수백년 동안 유럽 열강을 이끈 것은 도덕을 상실한 마음이다.

-귀중한 생명들이 무수히 희생되니 이들의 시체로 피바다를 이루는 날들이 끊이지 않는다.

-서양이 동양을 침탈하는 암울한 현실에서 힘을 다해 방어하는 것이 제일가는 방법이다.


재판 시 판사가 물었던 말이 있습니다.

판사: 피고가 마음에 품고 있다는 정책은 무엇인가?

안중근: 일본은 야심을 버리고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해야 한다. 

          아시아 공동으로 은행을 설립하고 공동화폐를 발행해 상호 신뢰를 쌓아야 한다.

          강건한 청년을 모집하여 군단을 조성하고 서로의 언어를 배워 각국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100여년전에 유럽 연합과 같은 공동체를 구상했던 안중근의 생각이 놀랍기만 합니다.

미완으로 남은 동양평화론에는 어떤 내용을 쓰고자 했는지 짐작은 가지만 

미완으로 남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큽니다.

지금 어디 어느 땅에서 쉬고 계시는지 시신조차 찾지 못해 조국의 품에 안기지 못한 안중근 의사...

그의 애국심과 평화정신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때는 1882년, 13개월이나 급료를 받지 못했던 구식군인들에게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드디어 급료를 준다고 모이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급료를 받은 구식군인들은 쌀을 보고 폭발할 수 밖에 없었다. 선혜청 고지기(관아의 창고를 지키는 사람)의 농간으로 쌀의 양도 턱없이 적고, 그나마 모래가 잔뜩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흥분한 구식군인들은 선혜청 고지기에 몰매를 가했습니다. 민겸호는 당시 선혜청 당상으로 구식군대의 폭동 주모자를 찾아 죽이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구식군인들은 흥선대원군을 찾아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자신들이 이렇게 대접이 좋지 않게 된 것은 민씨일파의 개화정책 추진이라고 생각한 구식군인들은 개화 정책을 추진하던 민씨 관리들을 죽이고 민겸호도 죽였습니다. 신식군대 별기군의 훈련교관 호리모토도 죽이고 일본 순사들도 죽였습니다. 그리고 개화정책을 추진하던 배후의 인물이라고 생각한 왕비 민씨를 죽이려 궁궐까지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왕비 민씨는 왕비의 옷을 벗고 궁녀의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리고 난을 피해 충주 장호원의 충주목사 민응식의 집으로 피신하였지요.

 고종은 사태를 수습하기 어려워 흥선대원군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흥선대원군이 재집권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민씨 일파는 재빠르게 청나라에게 군대 파병을 요청합니다. 청나라는 임오군란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조선에 대한 청의 종주국 위치가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은 대원군을 제거하고, 임오군란을 평정하며, 조선의 종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무력 개입에 나선 것입니다.


 광동수사세족 오장경은 북양함대 군함 4척에 경군 3000명을 동원하여 덩저우를 출발하여 조선 남양만 마산포에 상륙합니다. 남양만 마산포는 현재 화성시 송산면 고포리입니다. 그리고 한양에 입성하여 오장경과 원세개는 운현궁에서 흥선대원군을 만납니다. 그리고 청나라 진지로 답방하여 현재 조선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자고 하였습니다. 대원군은 소수의 병력을 대동하고 남대문 밖에 있던 청나라 진지에 답방하였습니다. 대원군은 청나라가 조선의 현실 문제에 대해 중재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청군은 대원군을 임오군란의 주모자로 몰아 남양만으로 압송합니다. 재집권한지 33일만의 일입니다.

 남양만에서 청군 군함 등영주함에 실려 텐진으로 압송됩니다. 더 기막힌 것은 청군에 끌려간 대원군이 죄인취급 당하며 북양대신 이홍장의 국문을 받는 것입니다. 일국을 호령했던 대원군의 말로가 참으로 비참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홍장의 국문에 비굴하지 않았던 대원군에게 영원한 귀국 불가의 판결이 내려지고 바오딩 행정관청인 구 청하도서에 구금당합니다. 지금은 이곳이 헐리고 없지만 신 청하도서에서 대원군의 억류 생활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감시병이 상주하고, 편지도 검열당하며, 외부인과 면담은 불가했습니다. 먹으로 그림을 그리며 분노를 다스리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웃긴것은 신 청하도서의 안내문입니다. 현재 보수공사 중인데 안내문에는 "대원군이 패해 중국의 도움을 받아 중국으로 왔다."라고 쓰여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중국이 강제로 납치해 놓고서 도움을 줘서 중국으로 왔다니 참 어이가 없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임오군란이 진압되고 오장경과 그의 휘하였던 원세개는 조선에서 위압적으로 행동하였습니다. 고종은 오장경 일행이 청으로 돌아간 후 반청의 태도를 취합니다. 친러 정책이지요. 이에 청나라는 고종과 민씨정권을 견제하기 위해 대원군을 슬그머니 석방하여 조선으로 돌려 보냅니다. 원세개가 호위하였고 피랍된 지 3년 2개월만입니다. 운현궁으로 돌아온 흥선대원군은 이로당에서 칩거에 들어갑니다.

서월철폐, 경복궁 중건, 여러 정책들의 쇄신, 시대를 읽지 못한 쇄국정책 등을 추진한 대원군은 끊임없이 정계 복귀를 원했으나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주모자인 미우라에게 이용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또 다시 권력을 잡는 듯 하였으나 친러파에 의해 바로 축출당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898년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합니다.

힘없는 나라였기에 일국의 대원군이 납치당하고, 그들의 철저한 정치적 목적에 이용당하기도 하였다는 것이 참 슬픈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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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노벨은 186493일 폭약공장에서 사고가 나 막내동생 등 5명의 목숨을 잃게 된다.

그래서 그는 다짐한다. 사고없이 누구나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폭약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그 당시 폭약의 재료는 나이트로글리세린이었다.

당시 광산개발, 철도길 공사, 군대 등에서 폭약을 원하고 있었으므로 노벨의 폭약공장은 바쁘게 돌아갔다.

하지만 나이트로글리세린은 폭발성이 뛰어났으나,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약간의 충격에도 쉽게 폭발하니 다루기도 어렵고 운반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노벨의 공장에서도 폭발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자 세계 각국은 나이트로글리세린 사용을 금하기로 하였다.

노벨의 공장도 다시 재건축하여 공장허가 신청을 냈지만 위험하다는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노벨은 나이트로글리세린 개발 독점권을 얻기 위해 많은 돈을 빌려 쓴 상태였기 때문에 파산은 시간문제였다.

다급해진 노벨은 나이트로글리세린을 어떻게 하면 폭발이 쉽게 일어나지 않게 만들 수 있을까? 연구를 하였다.

그러다가 나이트로글리세린이 들어있던 플라스크를 땅바닥에 실수로 떨어뜨렸다

그 순간 노벨은 ! 이젠 다 끝났구나!’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어나겠지?’

그러나 나이트로글리세린은 폭발은 일어나지 않고 바닥에 깔려있던 톱밥에 그냥 스며들었다.

노벨은 즉시 톱밥을 모아 폭발시켜 보았다

나이트로글리세린이 스며 들어 있어서 그런지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폭발력은 있었다.

그래, 톱밥과 같은 물질을 찾아 다시 실험해보자. 액체인 나이트로글리세린이 폭발하지 않게 하는 어떤 물질과 반죽하여 만들면 될 것이다. 그 물질을 찾아내면 되는 것이다."

숯가루로 반죽해보고, 벽돌가루 등으로도 반죽하여 만들었지만 폭발력이 너무 미미하여 실험은 계속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창고에서 나이트로글리세린을 가져다 실험을 다시 하려고 했는데 나이트로글리세린과 규조토가 엉겨붙어서 생긴 반죽덩어리를 발견하였다

이것을 폭발해보니 순수 나이트로글리세린보다는 폭발력이 약했지만 뇌관을 작동해야만 폭발한다는 점에서 폭약으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렇게 실험에 실험을 해서 나이트로글리세린을 안전한 폭약으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이것이 바로 다이너마이트이다.

다이너마이트를 광산에서도 사용하고, 공사장에서도 사용하고, 전쟁에서도 사용하고 다이너마이트 발명으로 노벨은 어마어마한 부를 거두게 된다.

하지만 어느 날 신문에서 죽음의 상인-노벨, 숨을 거두다.”라는 오보를 접하게 된다.

노벨은 그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하여 자신의 전 재산으로 재단을 만들어서 인류의 문화발전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상을 주라고 유언을 남긴다. 그래서 제정된 상이 물리학상, 화학상, 문학상, 평화상, 생리의학상, 경제학상 등이 있다. 우리 나라는 김대중 전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는데 다른 상에도 수상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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