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코리아 한복퍼레이드에 불편한 박술녀 선생


미스코리아 심사에서 한복 퍼레이드를 했다.

그런데 입은 한복이 한복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한복을 개량하는 것은 좋지만

노출이 심한 한복으로 만들어

퍼레이드를 하는 것은 좀 보기 거북했다.


한복 디자이너 겸 한복연구가인 박술녀 선생은

이번 미스코리아 한복 퍼레이드가

보기 불편했다고 한다.

얼마든지 예쁘고 아름답고 우아하게

만들 수 있는데

적정선을 넘어간 한복이라고 말했다.


노출도 있고 몸에 딱 붙게 만들어 달라고 하면

박술녀 선생은 그냥 서양 드레스를

입으라고 말한다.


BTS도 입는다는 한복은 박술녀 선생이

만들었다고 한다.


나도 결혼식때 입었던 한복이 있기는 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입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개량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참 편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미스코리아 한복 퍼레이드처럼

너무 변형되지 않고

한복의 멋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개량 한복을 입고 싶다.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는 가격이

다소 비싸다는 점이다.

한복을 고급화 하는 것도 좋지만

실용화를 생각하여 저가의 한복을

만들어 팔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너무 비싸다 보니 요즘은 결혼식에서도

한복을 사지 않고 대여해 입는다.

사면 뭐하나?

일 년에 1번 입을까 말까 한 옷인데...


그러니 박술녀 선생처럼 훌륭한 분이

만드는 것은 명품으로 인정해 주고,

나 같은 서민들도 일상복으로 입을 수 있게

저가의 옷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이번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입은 것은

한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스꽝스럽고 정체불명의 서양 옷에 가깝다.


박술녀 선생은 한복을 현대적으로

변형하는 것은 좋지만

한복 자체의 고유성이나 전통성을

무시하면 안된다고 말씀하신다.


소중한 문화유산인 한복을

대대손손 아름답게 전해줘야 할 것이다.






천재소년 송유근 박사 학위 미취득으로 제적


송유근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드러내며

각종 매스컴에서 앞다투어 보도했던 것이 기억난다.

6살에 이미 대학 수준 미적분을 마스터하고

초등학교 공부를 6개월 만에 다 떼고

중졸과 고졸 검정고시 합격 후 

아홉 살에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12살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에 입학하여

석박사 통합과정을 공부했다.


사람들은 국내 최연소 박사가 탄생될 것이라고 기대를 했다.


그러나 논문 표절 논란, 지도교수 교체 등으로 우여곡절 속에

재학 연한인 8년 안에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대학측은 송유근씨를 제적시켰다.

하지만 송유근은 재학 연한은 초과했지만 실제로는 7년동안

교육을 받았으니 제적은 부당하다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논문표절과 지도교수 교체 등으로 제대로 된 수업을 받지

못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제적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송유근은 아직 젊다.

22살밖에 되지 않았다.

기회는 언제든지 또 있다.


과거는 지나갔으니 다시 시작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논문 표절 같은 것은 다시 하면 안된다.

지도교수와 함께 지도교수가 예전에 이미 발표한

연구자료를 상당 부분 그대로 사용하면

당연히 논문 표절 아닌가?


세간의 관심이 큰 부담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해보자.

힘내서 한국 과학계의 큰 사람이 되어 보자.

일본을 따라 잡아보자.


송유근이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 나와 또렷또렷하게

말했던 장면이 기억난다.

그때의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엉짱, 뒤태 미녀라 불리는 심으뜸


몸무게도 2.2kg로 태어나 인큐베이터 신세를 지고

1살이 되기도 전에 폐렴과 뇌수막염으로

생사를 오간 아기(소녀)가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자주 아파서 병원 신세를 많이 졌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시절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기초 체력을 기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고,

운동의 매력에 푹 빠진 그녀는

동덕여대 체육학과에 들어간다.


운동이 주는 삶의 활력을 알고

20살때부터 트레이너를 시작한다.

어린 시절 저질 체력을 극복하고

생기 발랄하게 대학생활을 보낸다.

그러다가 몇 년 후 미국에 간다.


2012년 미국에서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시속 150km의 속도로 빠르게 주행하는 자동차가 있었다.

그 안에는 한 여자가 타고 있었다.

깜빡 졸음 운전으로 자동차는 전복되고 말았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여자는 병원으로 후송된다.

눈을 뜬 여자는 자신의 몸에 수많은 호스가

꽂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머리는 깨질 듯 아프고

폐에 멍이 들어 숨을 쉬는 것 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운동을 많이 한 건강체질이라

몸의 회복속도가 매우 빨랐다.


퇴원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병원에 가보니

골절된 뼈가 잘못 붙어 다시 재수술을 해야만 했다.

뼈를 떼고 다시 제대로 붙이는 수술을 했으니

고통이 매우 심했다.

폐쇄공포증, 공황장애까지 와서

한동안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다.

큰 수술을 2번이나 했으니 육체적, 심적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 없어

재활을 하기 시작한다.

재활을 하기 위해 선택한 종목이 바로 필라테스이다.

필라테스에 재미를 붙인 그녀는 강사자격증까지 취득한다.


그리고 휘트니스 대회에도 참가하고자 마음먹는다.

아직 교통사고 후유증이 채 가시지도 않은 몸으로

지독하게 훈련을 하여 첫 대회에 출전한다.


이렇게 출전한 첫 대회에서 1등으로 입상을 한다.

그리고 이후 출전하는 대회마다 상위 입상을 한다.


이렇게 자신과 싸워 인간 승리를 이룬 사람이

바로 심으뜸 선수이다.

꾸준함으로 노력하여 자신의 꿈을 이룩한 심으뜸 선수는

운동의 효과를 강조한다.

사람들이 운동을 통해 체력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운동을 통해 새로운 삶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도 운동을 하기는 한다.

자주는 못하지만 하려고 하면 자꾸 핑곗거리가 생긴다.

운동으로 자신의 몸을 완성해 가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심으뜸 선수가 자신의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시련을 이겨내며, 피나는 노력을 한 것이 피부에 와 닿는다.


나도 심으뜸 선수의 동영상을 보고

체력의 중요성과 운동의 효과를 느껴보고 싶다.

특히 스쿼트 동영상을 보고 따라하며

기초 체력을 키워볼까 한다.


매일 1000개 스쿼트를 한다는 심으뜸 선수,

고난과 시련을 슬기롭게 극복한 심으뜸 선수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약산 김원봉


약산 김원봉은 1919년 의열단을 조직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를 썼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국무위원

해방 이후에는 월북하여 중앙인민위원,

군사부장을 역임했다.


평생을 독립운동 운동을 하였지만

남북 모두 그를 원하지 않은 것 같다.

정부에서 김원봉에게 서훈을 주는 것에 대해

찬반 논란이 뜨겁다.


일제가 두려워하고,

김구보다 현상금이 더 높았다는

약산 김원봉(현상금 320억원)


친일파 암살,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주요기관 폭파를 주도했다.

그래서 친일파와 일제는 김원봉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독립운동을 했지만

그는 1948년 월북하여 북한에서

큰 역할을 하다가 결국 숙청 당한다.


월북한 이유로는

노덕술의 고문과 뺨을 맞은 비통함,

자신을 음해하고 죽이려는 위협,

여운형이 죽임을 당한 것 등 다양한 설이 있다.


특히 노덕술은 일제 치하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검거한 악덕 경찰이었다.

그런데 독립된 한국에서

일제에 빌붙었던 악질 경찰이

자신을 뺨을 때리며 고문한 것에

너무나 분하여 꺼이꺼이 울었다고 한다.


김원봉은 현재 독립유공자 명단에는 없다.

누구보다 더 열심히 독립운동을 했지만

북한으로 월북한 사실때문에 독립유공자 명단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는 약산 김원봉 역을 맡아

열연하였다.

솔직히 나는 암살을 보기 전에는 김원봉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영화 관람 후 집에 와서 김원봉에 대해 찾아보니

독립을 위해 여러가지 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왜 월북했을까?

월북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였는지,

아니면 원래 공산주의자였는지는

나는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월북해서도 6.25남침을 반대했다는 것과

그로 인해 차츰 김일성의 미움을 사서

숙청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으로 월북했어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다는 것 같다.


정부는 국민 의견을 경청하여

김원봉에 대한 독립유공자 결정 여부를

매듭지었으면 좋겠다.



서유석 노래 불법 리메이크


가는 세월 그 누구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서유석의 노래를 불법으로 리메이크한

음원 제작사에 1심에서 유죄를 선고했다. 


2015년 작곡한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이란 노래를 서씨의 허락도 없이

음원을 제작한 혐의가 있어 재판이 열린 것이다.


여기에서 서씨는 자신의 사인과 주민등록증이

자신도 모르게 위조되거나 유출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작권 협회에 자신의 음원을

사용해도 좋다는 문서를 저작권 협회에 

허위 제출하여 리메이크하였다고 

서씨는 주장한다.


어디에서 어떻게 자신의 사인과 주민등록증이

유출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자신의 허락도 없이 음원을 판매한 것은

서씨 노래에 대한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일단 2곳의 회사를 고발하여

재판을 받았는데,

서울 북부지법에서는 벌금 5백만원을 선고하고,

의정부지법에서는 음원 제작사의 혐의없음을 선고했다.


서씨는 똑같은 공소장을 제출했는데

재판 결과가 이렇게 다른 것은

법원의 해석이 조금 차이가 있어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고 있다.


그동안 음반 시장에서는 원작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리메이크를 하는 관행이 있었다.

불법 음원 제작사들은 리메이크한 곡을

휴게소에서 팔기도 하였다.

음악 경연 방송에서도 원작자의 허락 없는

편곡이나 리메이크가 비일비재했다.


앞으로는 원작자의 저작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불법 리메이크를 하지 않도록 하는

법적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봉준호 기생충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품다.


칸 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를린, 베니스) 중 하나이다.

프랑스 남부 칸에서 매년 5월에 개최되는 영화제로

황금종려상, 감독상, 각본상, 남자배우상, 여자배우상 등을 수여한다.


황금종려상이란 칸 영화제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이다.

경쟁 부문 초청작에서 최고 작품을 연출한 감독에게

수여하는 칸 영화제의 최고상이다.


칸영화제는 경쟁부문은 20여편이 영화가 초청작으로 상영되는데,

가장 우수한 작품이 황금종려상으로 선정된다.

비경쟁부문은 수상하는데 경쟁을 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는 칸 영화제와 몇 번의 인연을 맺기도 하였다.

2002년 임권택 감독은 취하선으로 감독상

2003년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로 그랑프리

2009년 박찬욱 감독은 박쥐로 심사위원상 등을 수상한 바 있으나

아직까지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

수상 소감도 스스로 잘해서가 아니라 홍경표 촬영감독,

송강호 등과 같은 위대한 배우들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수상의 영광을 배우들과 스텝들에게 돌렸다.


블랙 코미디인 영화 기생충은 송강호 아들 최우식이

이선균네 과외 교사로 면접을 보러 갈 때 일어나는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그린 영화이다.


주요 출연배우로는

송강호, 최우식, 이선균, 조여정, 박소담, 장혜진 등이다.


<봉준호 감독의 주요 영화>

2000년-플란다스의 개(데뷔작) - 흥행실패

2003년-살인의 추억-525만 관객

2006년-괴물-1301만 관객

2009년-마더-약3백만명 관객

2013년-설국열차-약940만명 관객

2017년-옥자-약32만명


영화감독을 꿈꿨던 12살 소년은 이제 세계를 호령하는

최고의 감독이 되고 꿈을 이뤘다.

앞으로도 좋은 영화로

국민들의 감성을 어루만져 주었으면 좋겠다.


러시아 제국 말기 괴승 라스푸틴


우리나라 고려 시대에는 신돈이라는 승려가

공민왕의 총애를 받아,

정치를 좌지우지 했던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 제국 말기에도 신돈과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라스푸틴입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리아 사이에는

1남 4녀가 있었습니다.

그중 막내 알렉세이 황태자는

유전병인 혈우병으로 고생하였습니다.

황후의 외할머니인 영국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유전되어

알렉세이 황태자도 혈우병이 있었던 것입니다.


용하다는 의사에게 진찰을 받게 하였지만

나을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때 라스푸틴이 신비의 치료 능력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들였습니다.

신기하게 알렉세이 황태자가 흐르던 피를 멈추게 하여

혈우병의 고통을 줄여 주었습니다.


황후 알렉산드리아는 라스푸틴을

하늘이 보낸 사람이라고 하며

극진하게 대접하였습니다.

라스푸틴은 황제와 황후의 총애를 받게 되자,

직접 내정까지 간섭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니콜라이 2세는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참이라

라스푸틴에게 정치를 맡겨 버렸습니다.


라스푸틴은 음주, 성추문 등 좋지 않은 일들이 무성했으나

황후는 그의 행동을 모두 감싸주었다.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하는데

독일군에게 계속 패하고 만다.

그러자 수세에 몰린 전선을 수습하고자,

니콜라이 2세는 직접 총사령관이 되어 전선을 지휘한다.

이때 라스푸틴은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남부전선을 공략하면 이길 것이라고

하느님께서 계시를 주었다고 말했다.


황제는 그 말을 듣고 모두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남부 전선을 공략했다.

그러나 이 공격으로 러시아 군사력은 붕괴되고,

우크라이나까지 독일군에게 내주고 말았다.

막대한 전비로 국가 재정은 파탄 나고,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이리나 공주의 남편 유스포프 공작 등

귀족들이 그를 살해하고자 하였다.

살해 방법은 라스푸틴을 초대하여

청산가리가 든 음식을 먹여 독살 시키는 방법이었다.


평소 이리나 공주의 미모를 흠모했던 라시푸틴은

초대장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공주의 초대에 응했다.

독이 든 음식이 나오고, 파티가 시작되었다.

라스푸틴은 그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두 시간이 넘게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며 놀았다.

아니,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죽어야 하는데

 끄덕 하지 않는 것이었다.


유스포프는 안되겠다 싶어

권총으로 그를 쏘았다.

그런데도 죽지 않고 유스포프의 멱살을 잡아 당겼다. 

멱살을 뿌리치고 유스포프는

소리를 지르며 도망을 갔다.

라스푸틴은 그를 잡으러 쫓아가는데,

어디선가 또 한방의 권총이 라스푸틴의 어깨를 쐈다.

그리고 라스푸틴을 무자비하게 폭행을 하고,

꽁꽁 묶어 네바 강에 던져버렸다.


독이 든 음식과 권총으로도 죽지 않은

라스푸틴을 강물에 던졌지만

죽었다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런데 며칠 후 그의 시체가 발견되자

유스포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황제는 라스푸틴의 죽음을 슬퍼하며

죽음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하였다.


조사 결과는 더욱 황당하다.

독 때문에 죽은 것도 아니고,

총을 맞고 죽은 것도 아니고,

물에 빠져 죽은 것으로 나타났다.

총은 치명상이었지만, 사인은 익사였던 것이다.


참 불가사의한 인물 <라스푸틴>이다.


그런데 라스푸틴의 이야기는

허구가 가미 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제 개인적인 생각도 든다.


유관순 1등급 훈장 추서

3.1절을 맞이하여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는 최고 등급의 서훈이다.


유관순 열사에게 3등급의

<건국훈장 독립장>수여했으나,

이는 유관순 열사의

나라사랑 정신과 공적에 비해

턱없이 낮은 훈격이라고 사람들은 말해왔다.


유관순 열사는 천안 병천면 아오내 장터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16살의 나이로 3.1운동을

주도한 상징적인 인물이다.


국민들도 3.1운동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유관순일 정도로

각인이 되어 있다.

그래서 이번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1등급의 훈장을 추서하게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의미라 할 수 있겠다.


이번 훈장 수여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유족에게 수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충남도와 천안시에서도

이번 결정에 환영의 뜻을 표하며,

유관순 열사의 독립정신,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 등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갈 바를

제시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 유관순 누나라고 배웠다.

그렇지만 우리들끼리

유관순 할머니 아니냐 하고

철모르고 이야기 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한 생각이 든다.

16세의 나이로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는데,

난 그 나이에 뭐했는가?


그리고 혹시라도

독립운동 하신 분들을

다른 의도로 악용되지나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당태종과 위징


위징은 당의 황태자 이건성의 휘하에 있으며

후일 당태종인 이세민을 죽여야 한다고

여러 차례 권고했다.


이세민이 이건성을 제거한 현무문의 변 이후

어떤 사람이 위징이

이세민을 제거하려 했다고 고변했다.


이세민은 위징을 불러다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지 호되게 추궁했다.

그러자 위징은 태연하게도

만일 황태자(이건성)가 자신의 말만 들었어도

오늘과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대신들은 이젠 위징은 죽음을 면치 못하겠구나 생각했는데

도리어 이세민은 위징의 당당함과 정직함에 매료되어

그를 간의대부로 임명한다.


어느 날 당태종은 18세가 안되었어도

키가 크고 건장한 남자라면 징집하라고

조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위징에게 하급 기관에 보내라고 했는데

위징은 보내지 않았다.

당태종이 여러 번 이야기해도

위징이 조서를 보내지 않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위징을 불러들어 꾸짖었다.

"위징, 왜 조서 안내려보내? 죽을래?"

"소신은 폐하의 조서에 찬성하지 못합니다.

군대가 아무리 사람이 많으면 뭐합니까?

군대란 얼마나 훈련하고,

지휘하느냐에 따라 강군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연못의 물고기를 잡는다고 물을 다 빼버리면

물고기를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잡을 물고기가 없어집니다.

지금처럼 군사를 징집하면

나중에는 어디에서 병사를

충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당태종을 17여년간을 보필하며

당태종이 듣기 거북할 정도의 간언을

200여차례나 했다고 한다.


위징이 나이들어 병석에 눕자

당태종은 위징을 병문안 갔다.

그자리에서 위징은 태평성대일수록

위태로울 때를 대비하라고

또 태종이 듣기 싫은 간언을 한다.


위징이 죽자 당태종은 묘비에 비문을 친히 썼다.

그리고 그 비문을 깨버렸다.

그동안 심한 잔소리(?)가 생각나서 애꿎은

묘비에 화풀이를 해댄것이다.


이제는 잔소리꾼도 없으니

(방현령은 고구려 원정을 반대)

당태종은 그렇게 정벌하고 싶었던

고구려를 쳐들어간다.

금방 점령할 것 같았던 고구려였는데

양만춘이 버티는 안시성에서

더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참패하고 퇴각한다.


이때 퇴각하면서 한말은

"아, 위징이 살아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하고 장탄식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당나라에 돌아가자마자 한 일이

위징의 묘비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안시성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눈을 하나 잃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고구려 원정으로 병에 오래 시달리다가

죽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현무문의 변>

당태종 이세민이

황태자 이건성과 동생 이원길이

아버지의 후궁들과 은밀한 관계라고

거짓 고변했다.

화가 난 아버지 고조는 두 사람을

궁으로 들어오게 했다.

아버지의 명령으로 궁에 들어오는

황태자와 동생을 현무문에서 죽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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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회항 박창진 사무장

박창진 플라이백

대한항공 사무장에서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된 박창진 사무장이 최근 책을 냈다.

이른바 땅콩회항으로

그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부당행위에 맞서면서

시작된 박창진의 고난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땅콩회항 이후

그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이야기를 담은 책

<플라이 백>을 출간했다.

fly back은 회항이라는 뜻으로

5년전 있었던 땅콩회항 이후의

그의 삶을 주제로 책을 쓴 것이다.


박창진은 원래 대항항공에서 인정받는

우수한 직원이었다.

남보다 빠른 승진을 하였고

다수의 표창도 받았다.

동기들이 노조활동을 해도

그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노조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회사에서 인정받던 박창진은

2014년 땅콩회항으로 완전 뒤바뀐 삶을 살게 된다.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되었지만

새로운 노조인 <직원연대노조>

지부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잘못된 기업 문화에 대해 공익제보하였지만,

회사 내에서는 문제직원으로

찍혀 불이익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갑자기

비행 스케줄을 부당하게 변경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현재 박창진 씨는 회사와 인사상 불이익을 당한 것,

한진 오너일가의 갑질 처벌 등을 위해 싸우고 있다.


한때는 대한항공의 홍보모델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공항장애를 겪으면서도

사회운동을 하는 것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일반인이라면 벌써 대항항공에

두손 두발 들고 나와

신세한탄을 하며 살아갔을텐데...


그리고 사람들은 그에게 묻는다.

2014년 뉴욕공항 비행기로 다시 돌아간다면

조현아에게 똑같이 행동할 것이냐고 묻는다.

그는 그렇게 할 것이다. 라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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