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보라카이 해변이...

보라카이와 발리 해변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예전 보라카이 갔던 기억이 떠 오른다. 한밤중에 도착하여 한참을 자동차타고, 배타고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깔리보공항도 기억이 생생하다. 도대체 이게 공항인지 버스대합실인지... 국제공항이 너무 허접해서 웃음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시설 투자 좀 했으면 하는 공항이다.

기사의 내용은 필리핀 보라카이, 인도네시아 발리의 해변에 쓰레기 문제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만큼 위험하다고 한다.

인기 휴양지인 보라카이가 어떻게 이지경까지 되었을까? 지금도 그 하얀색 바다와 모래사장, 그리고 산미구엘 맥주를 마시며 공연하는 것을 관람하며 유유자적하던 것이 생각난다. 그렇게 아름다워 또 가고 싶은 곳이었는데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있어서 그럴까?

두테리테 대통령이 비상사태 선언할 수도...

필리핀의 두테리테 대통령은 쓰레기 문제로 비상사태를 선언할 수도 있다고 강도높게 대책을 세우라고 이야기 한다. 섬주민과 관광산업 종사자들이 환경정화 작업을 시작하지 않으면 보라카이의 관광산업을 중단시키겠다고 신속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 보라카이 관광업체들이 바짝 긴장하고 대책을 세울 것 같다. 그리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환경교육 실시 및 관광객들의 몰지각한 쓰레기 투기 행위가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발리도 쓰레기 문제 심각...

발리도 마찬가지로 각종 플라스틱 병, 비닐 등 쓰레기가 뒤덮인 곳에서 물고기들이 그 사이를 헤엄쳐 다니고 있다고 한다. 발리 쓰레기도 발리에서 버린 것과 먼 바다에서 흘러 들어온 것 등이 아름다운 해변의 경관을 해치고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발리에도 뭔가 특별한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아름다운 우리 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쓰레기 재활용을 위한 분리 수거,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관광지에서는 자기 쓰레기 집으로 가져가기 등 생활속에서 작은것부터 실천하여 모두 환경지킴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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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영국 시내교통 이용시 사용하는 오이스터(Oyster Card)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1월 12일부터 영국 여행을 하고, 19일 체코 프라하로 갔지요.
문제는 영국 런던에서 딸이 2층버스를 처음 보고 너무 타고 싶어하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눈앞에서 이층버스를 보고 신기했는가 봅니다.

2층버스 지나갈 때 찰칵


그런데 우리들은 이미 여행 스케줄이 있고, 또 현지 가이드와 2번의 여행이 예정되어 있어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18일에 한 곳을 가지 않고, 버스를 타기 위해 가까운 워털루 역에서 오이스터 카드를 샀습니다.
보증금 5파운드, 충전금 5파운드 총 10파운드 입니다.
4인 가족이니 40파운드가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버스를 타고 런던탑으로 가려고 올라 탔으나 아! 이런 버스를 잘못타는 바람에 반대편으로 가더라구요.
그래도 일단 탄 버스이니 2층으로 올라가 맨 앞좌석에 앉아 딸에게 "기분 어떠니?"라고 물으니 좋다고 신기하다고 하며 좋아하더라구요. 그런데 버스는 자꾸 반대편으로 가니 어쩔 수 없이 몇 정거장 간 다음에 내렸지요.
그곳에서 우버 불러서 런던탑으로 관광 잘 했습니다.

런던탑의 건물들



런던탑에서 바라본 타워브릿지


런던 타워는 1066년에 착공한 건물로 1100년부터는 주로 귀족이나 왕족들을 가두는 감옥이나 사형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구요.
입장료는 60인가 70파운드 들어간 것 같습니다.(4인가족)

그 다음날 우리 가족은 체코로 넘어가기 위해 아침부터 짐을 다시 정리하고, 오이스터 카드 환급받으려고 워털루 역으로 갔습니다. 보증금 20파운드와 사용하지 않은 충전금 12파운드 총 32파운드를 환급하려고 카드를 티켓머신에 댔는데 환급 관련 로고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해도 안되어 옆에 있는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하루가 지나야 환급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아! 이런....여행 책자에는 환급받을 수 있다고만 나왔지 24시간 지나야 환급받을 수 있다는 말은 없어서 당연히 되는 줄 알았는데...비행기 시간에 맞춰 가려면 우버 타고 빨리 공항으로 가야하는데....
어쩔 수 없이 기념으로 가져와 버렸습니다.

오이스터 카드 4장


혹시 영국에서 오이스터 카드를 사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실 계획이 있으신 분은 환급받을 수 있도록 미리 구입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영국은 너무 좋았습니다. 물가가 다소 비싼 것과 우버 값도 조금 비싼 것이 흠이지만 런던은 또 가고 싶네요. 그때 오이스터 카드 사용할까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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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교

프라하는 보헤미아 왕국부터 약 1000년 넘게 이어진 체코의 수도로 중세 건축물이 잘 보존된 도시로 모차르트가 매우 사랑했던 도시라고 합니다. 또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지요. 

신성로마제국은 독일오스트리아, 체코 등 유럽 중앙의 큰 나라였습니다이렇게 큰 나라의 수도를 카렐 4세가 프라하로 정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프라하의 시민들은 아직도 카렐 4세 시대의 프라하를 프라하 역사의 가장 황금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천년의 도시 프라하의 명소 중 하나인 카렐교

블타바 강 위로 프라하 성과 구 시가지를 이어주는 다리인 카렐교를 소개합니다.

 


카렐교는 블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약 500미터넓이 약 10m 정도 되는 중세 시대 석조 다리입니다옛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렐 4세의 이름을 따서 카렐교라고 부릅니다. 1357년 카렐 4세가 만든 다리인데 1402년 바츨라프 4세 때 완공됩니다.

프라하 성과 구 시가지를 이어주는 다리로서 늘 관광객으로 붐비는 다리이니 소매치기 조심해야지요저는 구 시가지 근처에 숙소를 잡았던 관계로 걸어서 얼마 안 걸리는 곳이기에 이곳을 3번 갔네요갈때마다 다리 위에는 거리의 악사예술가동냥하시는 분관광객들 등 늘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동양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사람이더라구요. 한국사람들 엄청나게 많이 옵니다. 아마 도시가 너무 예쁘고 중세적인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그런가 봅니다. 또 드라마에서도 소개가 많이 되어 더 많이 찾는가 봅니다.

 


다리 위에는 조각상이 좌우에 각각 15개씩 모두 30개가 있습니다여러 개의 조각상 중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바로 얀 네포묵(얀 네포무크얀 네포무츠키)의 조각상입니다전설에 의하면 얀 네포묵은 바츨라프 4세의 왕비의 고해 성사를 들었다고 합니다바츨라프 4세는 왕비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왕비가 어떤 내용의 고해 성사를 했는지 알려달라고 합니다하지만 신앙심 깊은 얀 네포묵은 그 청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그러자 왕은 온갖 고문과 협박을 합니다그러다가 왕이 성직자를 죽였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얀 네포묵을 묶어 블타바 강에 던졌습니다죽음으로서 종교적인 신념을 지킨 얀 네포묵.

동판위에 새겨진 강위로 떨어지는 얀 네포묵별을 함께 만지며 소원을 빌면 그 행운을 가져온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소원과 행운을 빌며 만졌는지 그 부분만 맨질맨질하게 변했습니다.


 이제 구시가지 앞에 이르는 교탑앞에 이릅니다이곳은 30년 전쟁에서 스웨덴 군대를 막아냈던 격전지라고 합니다이 곳에서 왼쪽을 보면 동상이 보입니다바로 카렐 4세의 동상입니다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재위기간동안 프라하를 유럽의 중심도시로 탈바꿈 시킨 인물이지요이곳에서 프라하 성과 블타바 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모두 예술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교탑 주위에는 제복을 입고 유인물을 나눠 주는 사람들(흑인들이 많지요)이 있던데 이 사람들은 유람선 탑승을 안내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탑 바로 밑에 유람선이 있으니 유람선도 한번 타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카렐교 교탑>


<카렐 4세 동상>


<카렐교 교탑과 카렐 4세 동상을 한꺼번에 찰칵>


<카렐 4세 동상 바로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프라하 성, 블타바 강, 카렐교 모두 담을 수 있네요.>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영화 <007 시리즈>

총 24편의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고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남자 배우들 모두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21번째 007시리즈에서 본드걸 여배우 섭외에 어려움이 많았다. 영화 촬영을 시작해야하는데 여주인공인 본드걸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섭외하고자 하면 여배우들 모두 하나같이 거절을 했다. 당대 최고 인기 영화인 007에 출연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이상하게도 모두 거절을 했다. 거절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그것은 바로 <본드걸의 저주에 걸리고 싶지 않다.>라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본드걸의 저주란 무엇인가?

그것은 007 시리즈에 본드걸로 출연한 여배우가 다음 흥행작을 내놓지 못하고 쓸쓸히 영화계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의미한다.

1962년 최초의  007시리즈 제1탄이 제작되었다.  <007살인번호>에 출연한 우슬라 안드레스(1대 본드걸)은 육감적인 몸매를 한 배우였다. 영화의 장면에서 하얀 비키니를 입고 바다에서 백사장으로 걸어나오는 장면이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그녀가 입었던 하얀 비키니 수영복은 세계적으로 히트되었다. 하지만 1대 본드걸로서 엄청난 인기와 관심을 끌었던 우슬라 안드레스는 007영화 이후 총 12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모두 흥행하지 못했다. 그리고 쓸쓸히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멀어져갔다.

1998년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에 달하는 본드걸들이 007영화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나 007 영화가 끝난 후에는 출연하는 영화의 흥행실패로 몰락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드걸의 몰락을 본드걸의 저주라고 불렀다.

 그동안 영화사에서는 제작비 등의 이유로 육감적인 몸을 가진 신인배우들을 본드걸로 캐스팅했었다. 그래서 본드걸들의 연기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를 물색하여 캐스팅하고자 했다.

그래서 1998년 이런 저주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고자 연기력이 검증된 당대 프랑스 출신 최고의 여배우 <소피마르소>를 본드걸로 영입한다.(한참 책받침이나 코팅된 사진을 문방구에서 팔았던 기억이 난다.)

청순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던 소피마르소를 <007 언리미티드>의 본드걸로 캐스팅 한 것이다. 영화는 대 성공이었다. 그래서 소피마르소에게 다음 작품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이렇게 본드걸의 저주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나 소피마르소도 본드걸의 저주를 피해가지 못했다. 다음으로 출연했던 영화들 모두 흥행에 참패하고 만 것이다. 

이제 누가 본드걸을 하려고 할까? 모두 기피하고 있던 찰나 할리베리가 찾아왔다. 그녀는 흑인 여배우로 2002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흑인 최초로 수상한 배우였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던 여배우가 찾아와 자신이 본드걸 역할을 잘해낼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그녀는 007시리즈 제 20탄 <어나더데이>에 출연하게 된다. 이 007 영화 역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이후 할리베리는 또 다른 대작 영화<엑스맨2>, <캣우먼> 등 2편에 단독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다. 엑스맨이나 캣우먼은 대작으로 흥행에 실패할 수 없는 대작품이었다. 이렇게 저주는 풀리는 듯 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 모두 흥행 실패로 끝난다.

2005년 21번째 007 시리즈 영화 만들려고 하는 데 희망하는 여배우가 없다. 안젤리나 졸리 등 모든 여배우들이 본드걸의 저주란 이유로 출연 거부를 한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신인 에바 그린이라는 여배우가 맡게 된다. 하지만 에바 그린 역시 007 이후 많은 영화에 출연했으나 마땅한 흥행작 없이 주목받지 못하고 말핬다.

2015년 <007 스펙터>까지 개봉되었는데 이 영화에 출연한 본드걸은 저주가 있을지 아니면 깨트릴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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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오늘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탐방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요기를 하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제가 묵고 있던 숙소는 워터루 역 근처의 아파트로 템즈강을 건너서 약 30분정도 걸어가면 나오더라구요.
구글 지도를 켜고 천천히 영국 런던의 경관을 구경하며 걸어갔습니다. 걸어가는데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 조깅하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조깅하는 사람들 대부분 운동복을 바르게 갖춰 입고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이 육상 종목에서 그래도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강국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더라구요.
템즈강의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지나가다 보니 공사중인 빅벤도 보이고 공원에는 처칠 등 여러 위인들의 동상들이 보였습니다. 동상들이 있는 조그만 공원 바로 앞에 드디어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 런던에 위치한 성공회 성당으로 역대 왕들의 대관식, 결혼식, 장례식 등이 열리는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원래는 카톨릭 성당으로 지어졌으나 종교 개혁기를 거쳐 성공회 성당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장례식과 그 아들인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이 열린 장소로도 유명하지요.
또 우리와는 맞지 않게 시신을 성당 내부에 안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당 곳곳에 여러 영국 왕들과 왕비, 과학자 등의 무덤이 있습니다. 시신을 자꾸 안치하다보니 실내가 조금 좁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상적인 이야기 중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1세의 무덤은 전해오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피의 메리1세가 아니라 스코틀랜드 메리 1세입니다.)
잉글랜드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1세는 왕위 계승과 관련하여 서로 경계하는 사이였습니다. 메리 1세는 결혼도 순탄하지 않았으며 급기야 반란군에게까지 패하여 폐위당하고 잉글랜드 엘리자베스 1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요. 하지만 경계의 눈초리를 하고 있던 엘리자베스 1세는 메리 1세를 칼라일 성에 감금하고 반역죄로 몰아 처형하였습니다. 그리고 영국 중부에 있는 피터버러 성당에 묻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엘리자베스 1세가 자식이 없는 상태로 죽자 메리의 아들 제임스1세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통합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피터버러 성당에 묻혀 있던 어머니 메리 1세를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이장하여 엘리자베스 1세보다 훨씬 크고 아름답게 대리석으로 무덤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이 사원의 아쉬운 점은 실내에서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사원의 정문 바로 앞에서 우버를 부르면 10여분 내로 도착하니 참고하세요.

1592414. 임진왜란 발발로 조선땅은 아비규환으로 현장으로 변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명을 정벌하러 갈 테니 조선에게 길을 빌려달라고 하며 우리나라를 침입하였다. 생전 처음보는 무기인 조총으로 생전 처음보는 무기를 들고 나타난 왜군부대는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조선을 손쉽게 유린하였다.

그 왜군부대 중 조총부대를 이끌던 사야가

그는 조선의 문화를 동경하여 처음부터 투항을 결심하였다고 그의 저서 모하당술회록에 적어 놓았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그의 아내와 딸을 볼모로 조선에 출병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위협하여 어쩔 수 없이 출병한 사야가.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이런 불합리하고 의롭지 못한 전쟁을 찬성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선진 문화의 조선을 동경하였으며 기회를 틈타 조선에 귀화하리라 마음 먹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자신의 병사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하는 조선인 모녀를 목격하게 된다.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아내와 딸을 생각하게 된다.

부산진을 함락한 다음 날 사야가는 조선군에게 귀화하고 싶다는 편지를 쓴다. 이렇게 사야가는 귀화하여 김충선이라는 새 이름을 하사받는다. 본은 김해김씨, 이름은 충성하고 어진마음이라는 충선을 하사 받게 된다.

조선에서는 이렇게 귀화한 병사들을 항복한 왜군이라고 하여 항왜라고 불렀다. 이런 항왜를 활용하여 일본의 사정을 파악하고 조총 등 무기 관련 기술을 습득하였다.

김충선이 된 사야가도 조선군에게 조총 사용법 등을 조선군에게 알려주어 조선 조총부대를 만들게 된다. 왜군들에게서 노획한 조총으로 훈련한 김충선의 조선군 조총부대는 울산성 전투에 참전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우게 된다.

김충선은 그 후 1624년 이괄이 난, 1636년 병자호란에 이르기까지 화약제조와 조총기술 등을 전수하면서 조선의 명장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경상도 달성군에서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사야가는 조선이 꾸며낸 조작극이라고 주장한다하지만 1970년 작가 시바 료타로의 연구로 사야가는 김충선이라는 것을 밝혀 낸다그리고 사야가를 천하의 매국노이며 증오의 대상이라고 하였다일본에서도 아예 사라져버린 사야가의 가문이지만 한국과 일본의 후손들은 한국과 일본의 평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그리하여 해마다 달성군에 있는 달성한일우호관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방문하여 김충선 장군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모회당 술회록> - 김충선의 문집

-김충선 장군의 조선군 부임당시 이미 조선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고 그나마 들고 있는 창과 검의 훈련법마저 미숙한 상태였다.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킨 왜군에 환멸을 느낀다.

 

달성한일우호관 http://www.dskjfriend.kr/main

 -녹동서원(숭의당): 대구 달성, 모하당 김충선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서원

 -녹동사: 모하당 김충선 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곳

  -김충선 장군 묘소: 녹동서원 뒷산에 있습니다.

<앙리무어의 엄청난 발견>

1860

프랑스 식물학자, 박물학자인 앙리무어가 캄보디아를 찾아옵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찾아온 이곳에는 프랑스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동식물들이 있어 앙리무어는 연구의 성과를 낼 수 있어  큰 기대를 하고 옵니다. 그렇게 찾아온 그가 어마어마한 발견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밀림속에 숨겨져 있던 도시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 도시가 현재 캄보디아의 중요 관광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발견을 했는지 알아볼까요?

앙리무어는 동식물연구를 위해 캄보디아의 현지인을 고용하여 밀림탐사를 떠납니다. 밀림 속에서 다양한 동식물을 관찰하며 탐험하던 그는 연신 감탄을 쏟아냅니다. 탐험을 하다보니 밀림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게 됩니다. 어느 순간 캄보디아 현지인들이 더이상 밀림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합니다.

"왜 더이상 들어가지 않으려 합니까?" 

앙리무어가 이렇게 물어보자, 현지인들은 

"여기는 수백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머리가 일곱개인 뱀을 신으로 모시던 때 한 왕족이 밀림 속에 화려하고 거대한 도시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신을 잘 모셨습니다. 그런데 왕족들이 반역을 모의해서 신에게 도전을 합니다. 이에 엄청나게 화가 난 신은 큰 저주를 내립니다. 그 저주 때문에 도시는 밀림으로 뒤덮여져 도시는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사람들과 신에게 도전한 왕족들은 그후 유령이 되어 밀림속을 떠돌게 되었습니다. 그 유령이 이 밀림속에서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들어가면 큰일 납니다. 실제로 이곳에 다녀온 사람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밀림 속을 유령도시라고 합니다. 유령이 나타나고 뱀신에게 홀리면 정신이 나가고 죽게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못들어가니 집에 가겠습니다."

"돈을 더 줄테니 함께 더 들어가서 연구해 봅시다." 

앙리무어는 유령도시니 뱀신이니 이런것이 허무맹랑한 소리라 여기고 더 깊은 밀림 속으로 들어갑니다. 얼마나 더 갔을까? 뭔가 이상한 기운이 드는 것 같습니다. 

"으악!!!"

 현지인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갑니다. 뭔일인가 하고 앙리무어는 앞을 바라봅니다. 그곳에는 뱀의 모양을 그려놓은 조각들이 보입니다. 이걸 보고 현지인들은 뱀신이 나타난 줄 알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럼, 그렇지. 뱀신이 어디있어? 유령도시는 또 뭐야?"

이렇게 생각하며 앙리무어는 더 깊이 더 깊은 밀림 속으로 탐험을 합니다. 탐험에 탐험을 한 그는 드디어 어떤 유령같은 건물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그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저게 뭔가? 저게 정녕 유령도시인가? 어떻게 이런 밀림 속에 저런 건물들이 있을까?"

놀라고 흥분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좀더 가까이 가서 연구를 합니다. 그림도 그리고 황홀한 건축물에 넋을 잃기도 하고...... 그렇게 앙리무어는 밀림 속에서 엄청난 발견을 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무사히 밀림 속을 나와 마을로 와서 그의 조국 프랑스로 돌아갑니다. 그때부터 앙리무어는 이상한 이야기를 중얼거립니다. 캄보디아 밀림 속에는 어마어마한 도시가 있다는 둥 그리스, 로마 건축물과 버금가는 것이 밀림 속에 있다는 둥, 빨리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가야 한다는 둥 이렇게 계속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동양의 작은 나라이며 후진국, 그것도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밀림 속에 거대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는 사실을 누가 믿겠습니까? 사람들은 앙리무어가 드디어 뱀신에 홀려 미친 것이 아닌가? 유령도시에서 유령의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습니다. 앙리무어가 아무리 밀림 속에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혹시 그런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면 벌써 발견이 되었을 것 아니냐 하며 앙리무어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다가 1년 정도 지난 후 앙리는 불행하게도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하게 됩니다. '멀쩡했던 사람이 밀림 속 유령도시에 갔다오더니 진짜 유령에 홀려 죽은 것이 아닌가?' 그렇게 사람들은 생각하였습니다.

앙리가 젊은 나이에 그렇게 허망하게 죽은 후 그의 부인과 동생은 앙리무어가 캄보디아의 밀림 속에서 보고 그렸던 그림과 글을 모아 <캄보디아 탐험>이란 책을 출간합니다. 당연히 그 책은 사람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합니다. 그러던 1866년 프랑스의 한 도서관에서 우연히 앙리가 쓴 책을 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해군 장교인 루이 들라포르트였습니다.

책 내용 중 그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문장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다음 문장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캄보디아 밀림 속에 솔로몬의 신전에 버금가고 미켈란젤로가 세운 것 같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는 사실이다.>

루이 들라포르트는 앙리무어의 책을 따라 밀림을 탐험하여 거대한 도시와 위대한 건축물 앙코르와트를 발견하게 됩니다.


<수리아바르만 2세>

크메르제국의 제18대 왕으로 앙코르와트의 건설자인 수리아바르만 2세. 그는 12세기 초 현재 태국 롭부리 지방에서 왕족으로 태어났으나 왕이 되기 희박했던 젊은이였다. 당시 왕위 계승 결정권은 브라만 계급의 원로회의에서 결정하였다. 수리아바르만 2세는 매우 용감하고 지략이 뛰어났다. 이런 젊은이를 눈여겨 본 사람이 바로 왕위 계승 결정권을 갖고 있던 디바카라판티타(브라만 승려)였다. 이 사람은 브라만 계급에서도 권위있던 사람이었다.

1113년 당시 왕은 다닌드라바르만 1세였다. 수리아바르만 2세의 백부였다. 다닌드라바르만 1세 재위 당시 크메르제국은 몹시 혼란한 사회였다. 다닌드라바르만 1세는 본디 승려였으며 시문을 좋아하고 왕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노년에 억지로 추대하여 왕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당시 혼란한 사회를 수습할 능력이 없었다.

결국 왕위 계승을 결정했던 브라만들은 당시 무능한 다닌드라바르만을 몰아내고자 야망넘치는 수리아바르만 2세를 선택한다.

그들은 쿠테타를 통해 수리아바르만 2세를 왕위를 올린다. 이때 그의 나이가 17세이다.

여세를 몰아 다닌드라 가문을 몰아내고 1119년 마침내 크메르 제국의 통일 군주가 된다.


<앙코르와트의 건설>

크메르 제국은 오랫동안 오늘날 시엠립에 해당하는 앙코르를 도읍지로 하여 발전해 왔습니다. 하지만 크메르 제국의 성지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시엠립 북동쪽으로 약 40KM정도 떨어진 프놈 쿨렌산맥의 쿨렌산입니다. 이 곳은 802년 크메르 제국이 앙코르 시대를 연 최초의 왕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왕위에 오른 군주는 이곳을 순례하며 선대왕의 권력을 승계했다는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했습니다.

또 쿨렌 산은 종교적으로도 신성시됩니다. 이 당시 종교는 인도에서 들어온 힌두교였고 크메르 왕들은 힌두 최고의 신인 시바를 신봉했습니다. 그리하여 쿨렌산 크발스피앙에는 천여 개의 물속 링가가 있습니다. 링가는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요니를 받침대로 해서 그 위에 원통형의 조각을 올려 고정시켰습니다. 링가는 힌두교 시바신의 성기를 상징하고, 사람들은 링가를 생명의 근원이라 믿었다. 그러니 상류에 위치한 쿨렌산 크발스피앙에 링가를 만들어 생명의 근원과 신의 축복이 물길을 타고 앙코르까지 흘러오도록 한 것입니다.

크메르 제국의 왕들은 재임기에 1~2개의 사원을 건설하였습니다. 시바신의 권위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수리아바르만 2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종교를 개혁하고 국정을 쇄신하고자 또 다른 힌두교의 신 비슈누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왕궁 근처에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사원을 건설하기로 결정합니다. 그 건물이 바로 앙코르와트입니다.

앙코르와트의 석재들은 어디에서 가져온 것일까요? 바로 40km떨어진 성지인 쿨렌 산에서 가져왔습니다.

코끼리와 인력으로 수많은 석재들을 옮긴 후 조각하여 쌓은 앙코르와트. 세계 제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앙코르와트

동서로 약 1500미터남북으로 약 1300m에 달하는 땅위에 7톤짜리 기둥이 1800개, 돌로 된 방이 260개가 있는 정말 믿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건축기술로 지었습니다 

12세기 동남아시아의 작은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는지 신비로울 뿐입니다.


부대찌개가 왜 부대찌개일까요?
6.25전쟁이 한창이던 그 시절에 생겨난 부대찌개.
당시 미군부대 주변에서는 햄이나 소시지 등을 구하기 쉬웠습니다.
그걸 얻어다가 고추장, 김치 등을 넣어 푹 끓이면 맛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의 비극에서 태어난 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부대찌개를 자주 먹지는 않지만 그래도 칼칼한 음식을 먹고 싶을 때는
00부대찌개를 가곤 했습니다.
부대찌개를 시키고 김치를 더 넣어 끓이면 매콤한 그 맛이 참 좋았습니다.

오늘은 뭐 먹을까 하다가 장00부대찌개가 보이더라구요.
사람들도 제법 많이 있어 일단 들어가 보았습니다.
부대 전골이 9,000원 하길래 그걸로 시켰습니다.
잠시 후 나온 부대전골
파, 양배추, 양파가 적절하게 많이 들어간 전골냄비가 나왔습니다.
끓인 후 먹어보니 그동안 먹어봤던 부대찌개와는
다른 맛이 납니다. 깔끔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일품입니다.

그래서 난 오늘도 배둘레가 더 굵어집니다. 2공기나 먹었으니...
또 먹다 보니 중간에 사진을 찍었는데 또 먹고 싶네요.


오후에 아산온천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이순신장군님 묘소를 가 보았습니다.
일본의 침입에서 나라를 구하신 이순신 장군님의 묘소를 보았는데
햇빛이 잘 들어오는 명당 위치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묘지 뒤에는 소나무들이 이순신 장군님을 호위하는 듯이 서 있었습니다.

노량해전 중 전사하여 아산군 금성산에 모셨다가 광해 6년 이곳으셨다는 안내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덕수 이씨 충무공 가족묘소 안내도가 있어서 자세히 읽어보니 이곳에 아버지 이정, 충무공의 형님과 아우들이 함께 영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충무공 묘소만 보고 내려왔는데 조금 아쉽더라구요.
바람만 세게 불지 않았다면 다시 올라가보고 싶었지만 너무 추워서 밑에서만 쳐다 보았습니다. 

사적 112호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을 비석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정조대왕 신도비도 찍어 보았습니다. 정조대왕이 이순신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직접 지은 것을 1979년에 다시 만든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곳은 원래 사람이 별로 없는지 너무 한적합니다.
바람부는 날씨라 그런지 너무 사람이 없어 쓸쓸하기까지 합니다.

묘지 뒤쪽으로 산책 코스가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 묘소 둘레를 크게 돌면 소나무 향기로 힐링하며 산책할 수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미리 준비하고 훈련하고 나라를 구하신 이순신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발길을 돌립니다. 이곳에서 약 8km정도 떨어진 곳에는 현충사가 있으니 관람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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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시국 가이드 투어

베드로 대성당 입구의 모습-너무 큰 규모의 성당에 놀랐습니다.


베드로 대성당 돔위를 올라가서 바티칸시국의 모습을 찍었습니다. 가히 예술적인 나라입니다.

계단이 많아 힘들게 힘들게 올라갔는데,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나 상쾌하였습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성모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예전에는 유리가 없었는데 한 관객이 망치를 휘둘러 유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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