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 외암리에는 민속마을이 있습니다. 아산시민은 무료이지만 타지역 사람들은 어른 개인은 2,000, 어린이 개인은 1,000, 어른 단체는 1,600, 어린이 단체는 800원의 입장료가 필요합니다. 아산시민일 경우 신분증이 필요합니다. 민속촌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이지만 민속마을에는 사람이 직접 살고 있는 곳입니다. 

  표를 끊고 입장을 하면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이 다리 밑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데 자세히 보면 물 속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 이 물고기를 잡아 먹으려고 하는지 오리들이 유유히 수영을 합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편에는 물레방아가 있습니다. 예전에 왔을 때는 물이 흘러서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있었는데, 오늘가서 보니 물이 없어서 그런지 돌아가지 않습니다. 왼편으로 계속 가다보면 떡방아 체험, 떡판매하는 곳을 볼 수 있구요. 그 앞에는 장승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계속 전진하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민속놀이 체험장이 있습니다. 줄타기 체험, 투호놀이 체험, 링고리 던지기 등을 할 수 있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합니다. 움직이지도 않는 우마차 위에 올라가 재잘거리며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하는데 뭐가 그리 좋은지 히히덕 거립니다. 아이들의 동심이 참 부럽습니다.

 민속놀이 체험장 앞에 있는 초가집과 기와집에 들어가면 조상들이 사용하던 여러가지 농기구나 생활 용품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옷을 만들기 위한 물레, 벼를 탈곡하기 위한 탈곡기, 부엌 용품 등 지금은 거의 보지 못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어 어렸을 때의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한지부채 만들기, 한지손거울 만들기, 연필꽂이 만들기, 방문걸이 만들기, 율무팔찌 만들기, 탈 꾸미기, 엿 만들기, 고추장 만들기 등 각종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용요금은 7,000원에서 11,000원이 필요합니다. 민박도 외암리민속마을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통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또 이곳에서 만드는 연엽주도 맛볼 수 있고, 선물용으로 사셔도 좋습니다. 관람하다 보면 식혜 등 전통 음료를 파는 곳도 있으니 들어가셔서 음료 맛도 보시고, 한옥의 이곳 저곳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외암리민속마을에는 여러 식당들도 있습니다. 외암촌에가시면 잔치국수를 맛보실  수 있고산야들이 쌈밥정식도 괜찮습니다좀더 떨어진 곳에 외암골에는 점심에 손님들이 많이 찾습니다저는 낙지볶음을 먹었는데 맛있게 먹었습니다아이들과 함께 조상들의 생활모습을 살펴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면 외암리 민속마을 방문을 추천드립니다.

 그리스의 고대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피타고라스가 정의한 직각삼각형 길이 구하는 공식을 중학교 때 배웠던 적이 있습니다. 루트라는 개념을 처음 배우면서 몹시 혼란스러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이게 뭔 숫자인가 참 힘들어 했으나, 곧 적응이 되어 쉽게 문제를 풀었지요. 지금도 우리가 암송하고 있는 피타고라스 정리. 피타고라스는 세상의 만물은 수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수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리고 피타고라스를 따르는 여러 제자들과 함께 학파를 형성하였습니다. 이것이 피타고라스 학파입니다.

 그들은 정수와 분수로 세상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첫번째 정수는 1인데 1은 모든 수를 창조한 숫자라고 믿어 신을 상징하는 숫자였습니다. 2는 음을 상징하는 숫자로 여성을 나타냈습니다. 3은 양을 상징하는 숫자로 남성을 나타낸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2와 3이 만나면 5가 되는데 5는 결혼을 의미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세상의 평화, 사랑, 풍부함 등을 모든 수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숫자와 연관이 있다고 믿었기에 엉뚱한 규칙이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콩을 먹는 것을 금지한 것입니다.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누군가 콩을 먹으면 가혹한 형벌에 처해졌는데 이유는 콩을 가지고 숫자를 계산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콩을 가지고 계산했다 하여 그렇게 심한 형벌을 가해졌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얼토당토하지 않는 이야기 같습니다.

  그 이외에도 많은 규칙들을 잘 지켜야만 하였고, 수학적인 개인 연구 성과도 개인 발표가 아니라 피타고라스의 정의로 발표하였습니다. 어느날 사원 바닥의 대리석 직각삼각형 무늬에서 어떤 원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피타고라스는 빗변의 제곱은 다른 두변의 제곱의 합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피타고라스 정리인데요. 이것을 통해 어떤  수라도 정수의 비로 표현이 가능하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피타고라스 정리로 신전이나 원형극장 등의 건축물을 설계하여 짓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피타고라스의 제자 히파수스는 이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변의 길이가 1인 경우는 빗변이 정수로 표현되지 않고 무리수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이 당시에는 무리수의 개념조차 형성되지 않은 시기였으므로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연구 업적이 한 순간에 손가락질 받을까 걱정하였습니다. 분명히 정수의 비로 표현이 가능하다고 하였으므로 변이 1인 직각삼각형에서 어떤 정수의 비가 있을 것이라고 꾸준히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무리수와 같은 새로운 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히파수스는 결국 학파의 비밀을 폭로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히파수스의 주장을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철저히 입단속을 했습니다. 히파수스의 주장을 좀 더 연구한 후 무리수에 대한 것을 피타고라스가 발견하였다고 공식으로 발표를 합니다. 루트2 라는 개념에는 이렇게 어두운 과거가 있습니다.   결론은 무리수는 피타고라스가 아닌 히파수스가 발견한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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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련의 한 소절 "기도하는~~~~" "꺄아악" "사랑의 손길로 떨리는 그대를 안고~~포옹하는" "꺄아악" "가슴과 가슴이 전하는 사랑의 손길!~~~돌고 도는 계절의 바람 속에서~~이별하는 시련의 돌을 던지네~~아~~눈물은 두 뺨에 흐르고 그대의 입술을 깨무네. 용서하오 밀리는 파도를 물새에게 물어보리라. 물어보리라. 몰아치는 비바람을 철새에게 물어보리라.~~~"

"뿅뿅뿅~~ 뿅뿅뿅..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못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수울래~~~" 등등등 어렸을 때 불렀던 노래가 참 많습니다. 항상 연말이면 텔레비전에서 조용필과 나훈아 특집으로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시청하면서 따라 부르고 참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가왕 조용필도 어느 덧 데뷔 5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참 긴 세월동안 우리나라 대표 가수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락, 민요, 트로트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음악을 발표하며 대중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조용필은 원래 미8군에서 기타리스트로 데뷔하여 음악을 시작하였고, 1970년 가수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1집 앨범은 백만장이나 팔렸는데 그 당시 모든 앨범 판매량의 50%정도였다니 그 인기가 실감납니다. 1집 앨범 중 모든 노래가 다 인기가 있었는데 특히 창밖의 여자, 돌아와요 부산항에, 단발머리, 돌아오지 않는 강, 정, 한오백년 등이 생각납니다.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며 노력했던 가왕 조용필. 평양에서도 공연을 하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북한 사람들에게도 전파하였습니다. 또 자신의 밴드 위대한 탄생을 결성하여 웅장한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참 기억에 남습니다. 가수 주현미 남편도 위대한 탄생 기타리스트 출신이라고 하던데 정말 실력있는 뮤지션들은 위대한 탄생을 거쳐간 것 같습니다.

 곧 데뷔 50주년 기념 전국투어 콘서트를 실시한다고 합니다. 늘 변함없이 꾸준함과 성실함을 추구하는 조용필 선생님을 저는 변함없이 응원합니다. 19집 바운스를 발표하며 젊은 세대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는데 전국 콘서트 후 20집 앨범이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노래를 위해 소식과 절주를 실천하고 계신다고 하시니 20집은 곧 나올 것이라 예상되고 그 자세에서 진정한 프로의모습이 느껴집니다. 

 요즘 밖에 나가기 꺼림칙한 정도의 미세먼지로 호흡기뿐만 아니라 눈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지고 있습니다.

눈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 등 환경오염이 증가되고 있어 정기 안과 검진으로 눈 건강을 수시로 체크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정기검진과 더불어 일상생활에서 시력을 보호할 수 있는 생활습관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눈을 마사지하고 눈운동을 하여 눈의 피로를 풀어줘야 합니다. 스마트폰, 컴퓨터 작업 등으로 피로해진 눈을 회복하기 위해 토비콤같은 영양제를 먹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양 손으로 눈을 마사지 하거나 눈 운동을 하여 눈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입니다. 눈 운동은 뻑뻑한 안구를 풀어주어 시원함까지 줍니다. 고개를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가까이봤다가 멀리보는 운동을 합니다. 또 앞을 똑바로 보다가 안구를 왼쪽, 정면, 오른쪽, 정면, 위쪽, 정면, 아래쪽, 정면순으로 안구를 돌려 운동을 하면 눈의 피로가 풀어지고 노안까지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자기 전에 온찜질팩을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운 후 찜질을 하면 피가 잘 돌고 눈물샘도 자극하여 안구건조증에 좋습니다.

  둘째, 공부를 열심히 하는 자녀들의 방안 조명은 LED조명아래 스탠드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형광등은 불빛이 떨리는 현상이 있어 눈에 피로감을 줍니다. LED를 사용하면 전기 절약도 되고 불빛 떨림 현상이 거의 없어 눈 건강에 좋습니다. 특히 좋지 않은 습관은 잠자리에 들어 이불에서 스마트 폰을 보는 습관입니다. 주위 어둠과 스마트폰의 밝음이 눈의 피로를 가중 시키고 시력 보호에도 장애물이 됩니다.

  셋째, 눈을 주기적으로 깜빡이는 것이 좋습니다.전자 매체를 자주 사용하다보니 눈이 쉽게 피로해지고 건조해 집니다. 눈이 건조하면 각종 염증과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눈의 보호막이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눈을 깜빡이면 눈물샘을 자극하여 눈물이 공급이 되어 이물질과 각종 세균을 쉽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오래동안 하는 학생들,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는 직장인, 스마트폰에 빠진 사람들 모두 눈을 자주 깜빡 깜빡하면서 눈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넷째, 채소나 생선을 섭취하여 눈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눈 건강에 좋은 영양소는 오메가 3입니다. 오메가 3은 눈물샘을 자극하여 눈안에 눈물이 적정하게 나오도록 합니다. 오메가 3가 풍부한 생선으로는 등푸른 생선이나 연어, 해조류 등이 있습니다. 아스타잔틴이라는 물질은 항산화 작용을 하여 눈의 피로를 완화시켜 주는데 갑각류나 도미에 많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눈 건강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평소 시력에 문제가 없더라도 정기적인 안과 검진을 통해 안과질환을 미리 예방해야 합니다. 특히 미세먼지로 눈 건강에 빨간불이 켜진 요즘 스스로 눈을 청결히 하고, 알맞은 눈운동과 마사지, 올바른 생활태도, 영양분 섭취 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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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트칙령이란 프랑스 국왕이었던 앙리4세가 낭트에서 발표한 칙령인데 칼뱅파 개신교인 위그노의 신앙에 대한 자유를 보장한 것을 말합니다. 이는 단순하게 신앙의 자유만 보장한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신교와 구교사이에 발생했던 해묵은 갈등을 타파하고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에 더 큰 의의가 있습니다. 종교적인 신념을 넘어 국민통합과 평화의 공존이라는 메시지를 담아낸 앙리 4세는 지금도 프랑스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앙리 4세 이전의 왕들은 구교를 국교로 하고, 신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하여 많은 탄압과 재산 몰수 등의 처벌을 하였습니다. 파파라치처럼 그 당시에도 신교를 믿는 사람들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었는데, 몰수한 재산의 25%을 위그노를 신고한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위그노를 신고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다녔는데 이를 위그노 사냥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신교와 구교의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 앙리 4세가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더이상 나라가 분열되는 것을 볼 수 없어서 위그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고 또 모든 국민은 신앙에 따라 차별받지 않도록 하였으며 프랑스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였습니다. 

  앙리 4세도 원래는 위그노였으나 프랑스의 왕이 되면서 구교로 개종하였습니다. 국왕 스스로 신교와 구교를 모두 껴안은 정치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모든 국민들에게 일요일에는 냄비에 닭 한마리씩"이라는 말을 하였는데 그것은 신구교도간의 갈등에 시달린 프랑스 국민의 마음을 매우 잘 헤아린 말입니다. 국민들은 신앙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서로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냄비에서 고기가 끓는 냄새를 그리워하였습니다. 이렇게 통합과 화합, 경제적인 문제도 생각했던 것입니다.

  개신교의 입장에서 앙리 4세는 낭트칙령으로 호감을 받기는 했지만,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배신자라고 욕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종교적인 것보다는 프랑스의 평화와 통합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함께 고생했던 신교들을 잊지 않고 낭트 칙령을 발표하게 된 것입니다. 종교적 신념이 다르다고 박해나 차별을 하지 못하게 하고 국민들의 이익울 추구한 정책을 추진한 것입니다.

  일국의 왕이라면 자신의 생각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통합과 발전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지 앙리 4세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역사책에는 '앙리 대왕', '선량왕 앙리'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프랑스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앙리 4세의 정책을 종교적인 갈등을 끝내고 경제적인 성장을 가져오며 유럽의 강자로 떠 올랐습니다. 하지만 앙리 4세의 손자였던 루이 14세가 등극하면서 종교적인 갈등이 다시 생깁니다. 루이 14세는 퐁텐블로 칙령을 발표하며 낭트 칙령을 폐지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위그노들을 탄압하고 불법화 하였습니다. 루이 14세는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며 하나의 군주, 하나의 신앙, 하나의 법률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야만 절대왕권이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니 두 개의 신앙이 아닌 한 개의 신앙만 인정하게 됩니다.

  프랑스는 다시 혼란에 빠졌습니다. 몽텐블로 칙령으로 위그노들이 탈프랑스 하였기 때문입니다. 위그노들이 떠난 것이 뭔 문제가 되었을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위그노들이 아주 중요한 것이 그들이 상공업 종사자였기 때문입니다. 직업 소명설을 주장한 칼뱅의 생각대로 위드노들은 상당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프랑스를 떠나니 인재들이 많이 빠져나가게 된 것입니다. 상공업자를 비롯한 각종 기술자들이 프랑스를 빠져나가 프랑스의 경제가 휘청거리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망명한 곳이 영국, 프로이센, 덴마크, 네덜란드 등인데 이 국가들은 나중에 경제국 강국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몽텐블로 칙령의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짐이 곧 국가다 라고 말하며 절대왕정을 꾸리면서도 위그노들에게 좀더 관대했더라면 당시에 프랑스는 세계를 제패하는 패권국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낭트칙령과 앙리 4세를 읽고 강압보다는 관대함이 사람을 움직이고 나라를 움직인다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후배가 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메탈리카와 메가데스가 이야기가 있다고 하며 책을 권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제가 제일 좋아했던 그룹이 메탈리카였기 때문에 후배는 제가 생각났다면서 문자를 보내 왔습니다. 대학교 재학 시절에 취미로 그룹사운드에 들어갔는데 이내 저는 메탈리카의 음악에 흠뻑 빠져 버렸습니다. 그동안 듣지 못한 기타의 웅장함, 베이스, 드럼, 보컬 모두모두 좋았습니다. 특히 저는 너무 시끄러운 헤비메탈보다는 약간 느리면서도 애절한 기타 독주가 있는 슬로우 메탈이 더 좋아하지만 메탈리카 사운드는 뭔가 나를 이끄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룹사운드 발표회 시 꼭 메탈리카 음악을 1~2곡씩 연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어떻게 치는 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쭉 기타를 쳤어야 하는데 직장 잡은 후에는 별로 기타를 칠 일이 없었고, 또 한곡을 연습하려면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꾸준히 연습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시간도 없다보니 지금은 일주일에 1번 정도 기타를 잡는 것 같습니다.

 메탈리카 음악을 듣던 저는 어느 날 휴게소에서 파는 CD에서 "Symphony of Destruction"이라는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저 노래는 기타 소리는 좋은데 노래가 영 이상해서 어떤 가수인가 봤더니 메가데스였습니다. 기타 소리가 그냥 좋아서 구입하여 차에서 계속 들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후배가 메탈리카에서 퇴출되어 나온 사람이 메가데스를 만들었다고 문자를 보낸 것입니다.

 어허! 그 책 재미있겠는데 생각하고 바로 서점에 가서 책을 사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목차를 보니 97쪽에 그 내용이 있어 그 부분부터 읽었습니다.  97쪽에는 <메탈리카에서 하루 아침에 쫓겨난 남자> 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읽어 보니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음반 제작을 위해 첫 녹음을 하기 직전 밴드는 기타리스트 데이브 머스테인을 쫓아냈습니다. 머스테인은 '뭘 잘못했지! 아, 음반 제작이란 어느날 하루 아침에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닌데...' 달랑 버스표 한장을 들고 쫓겨난 그는 자신을 쫓아낸 멤버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합니다. 

'너희들이 후회하도록 만들어주리라. 너희들은 날 쫓아낼 것에 대해 눈물로 목욕을 하리라.'

 한동안의 방황을 끝내고 머스테인은 악마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작업에 몰두하여 2년 뒤 마침내 음반을 제작합니다. 음반은 약 50만장이나 팔렸습니다. 이 밴드가 바로 메가데스입니다. 메가데스는 이후 열심히 음악 활동을 하며 음반을 2500만장 이상을 팔았습니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이렇게 승승장구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를 쫓아낸 밴드가 메탈리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메탈리카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들을 확보하며 1억 8000만장 이상 앨범을 팔았습니다. 이 사실에 머스테인은 여전히 자신은 실패자라고 생각합니다. 성공의 기준이 바로 메탈리카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기준을 자신과 자신의 음악이었다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인데 메탈리카와 비교했기 때문에 여전히 실패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엄청나게 돈을 벌고 수많은 팬들이 그를 영웅시 해도 여전히 실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어디에 가치를 둘 것인지,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실패와 성공을 가를 것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경운궁입니다. 경운궁이란 경사스러운 기운이 모여 있는 궁궐이라는 뜻입니다. 이 궁은 원래 조선시대 세조임금의 손자이고, 추존왕인 덕종의 아들이며, 성종 임금의 형입니다. 추존왕 덕종이 죽자 세자빈 한씨도 출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라에서 월산대군과 자을산군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집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정치적인 계산에 의해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과 월산대군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둘째아들인 자을산군이 왕위에 오르는데 그가 바로 성종입니다.

 그러다가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 임금은 난을 피해 의주까지 몽진을 합니다. 우여곡절끝에 전쟁이 끝나고 선조는 다시 한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한양의 경복궁은 이미 폐허가 되어 왕이 머물곳을 찾다가 월산대군의 집을 궁궐도 사용하게 됩니다. 왕이 머물기에는 협소한 편이어서 주변에 있는 관리들의 집을 궁궐로 편입시킵니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도 경운궁에서 나라를 다스립니다. 그러다가 나라가 안정되고 재정이 좋아지자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그런데 광해군은 인조 반정에 의해 쫓겨납니다. 

  인조는 광해군처럼 창덕궁에서 정치를 합니다. 그리고 경운궁에 있던 가옥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선조가 정치를 보던 석어당과 즉조당만 남겨 두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경운궁은 궁궐로서의 수명을 다합니다. 하지만 1897년 다시 궁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1895년 야만스러운 일본 깡패들이 명성황후를 죽이고 시신을 훼손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났습니다. 고종은 급히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아관파천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던 고종은 다시 새로운 거처로 돌아오는데 그곳이 바로 경운궁입니다.

  그리고 1897년 10월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황제의 자리에 오릅니다. 이렇게 경운궁은 조선의 으뜸 궁궐도 거듭나게 됩니다. 하지만 다 쓰러져가는 나라에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애를 쓰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1905년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일본과 강제로 맺게 되는데 그 암울했던 역사적 사건이 경운궁 중명전에서 있었습니다. 을사늑약은 일본의 강제에 의한 것이라고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지만 오히려 황제의 자리에서 강제로 퇴위당하는 수모를 받습니다. 이젠 황제에서 퇴위되었으니 경운궁은 더이상 고종을 위한 궁궐이 아니었습니다. 고종의 아들 순종은 경운궁에서 머물지 않고 창덕궁으로 거처를 다시 옮겼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고종이 계신 경운궁을 <덕을 누리면서 오래 사십시오.>라는 의미로 덕수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경운궁이 아니라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한일 강제 병탄이 있은 후 일본은 덕수궁을 그대로 두지 않았습니다. 일제 유원지인 중앙공원을 만들고, 일본 관리들이 묵는 여관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궁궐터는 공원으로, 여관으로, 도로로, 학교로, 미술관으로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더욱 위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전쟁에서 폭격을 맞을 뻔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김영환 장군이 지켜냈지만 덕수궁은 주일공사 김용주의 역할이 컸습니다. 한국전쟁에서 전세를 역전한 인천상륙작전 시 맥아더는 서울 폭격 장소로 덕수궁을 지목합니다. 미군 해병대에서 적의 동태를 파악했는데 인민군들이 임시기지로 삼은 덕수궁에 모여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미군 지휘부는 덕수궁을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때 맥아더에게 다급한 면회 신청을 하고 간곡하게 폭격 철회를 요청한 사람이 바로 주일대사 김용주입니다.

  또 덕수궁을 지켜낸 미국인 포병부대 제임스 해밀턴 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덕수궁을 폭격하는 것은 양심상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한 나라의 문화 유산을 단 몇 초만에 모두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고 지휘부에게 명령 재고를 요청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휘부에서는 "인민군이 모두 빠져 나갈 때까지 기다려라. 덕수궁 폭격은 취소한다."

 이렇게 한국전쟁 시 없어질 뻔한 덕수궁을 지킨 두 사람, 김용주와 제임스 해밀턴 딜

 제임스 해밀턴 딜은 나중에 한국전쟁을 떠올리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오늘날 덕수궁이 잘 보존되고 있다는 것이 참 흐뭇하고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그날 내가 내린 판단과 행동은 내가 살아 있는 한 결코 잊을 수 없다."

 비록 전쟁 중이었지만 한 나라의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들이 덕수궁 나들이를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고마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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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용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면서 어떤 아파트에서는 경비원이 주민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경비원이 주민에게 비닐류와 플라스틱류는 당분간 분리배출하지 말고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라고 해서 화가 나 폭행했다고 합니다. 중국이 재활용품을 수입 금지하니 우리나라 각 아파트에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정에서 올바르게 배출해야겠습니다. 

  그러면 올바른 생활폐기물 배출요령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재활용 가능 자원 분리 배출의 핵심은 4가지입니다. 

첫째, <비운다>입니다. 용기 안에 담겨 있는 내용물을 깨끗히 비유고 배출해야 합니다.

둘째, <헹군다>입니다. 용기 안에 있는 이물질, 음식물 등은 닦거나 헹궈서 배출해야 합니다. 특히 담배꽁초 가득 넣어 버리면 안 됩니다.

셋째, <분리한다>입니다. 라벨 등의 다른 재질로 되어 있는 부분은 제거한 후 배출해야 합니다.

넷째, <섞지 않는다>입니다. 종류별, 성상별로 구분하여 분리 수거함으로 배출해야 합니다.

 다음은 플라스틱이나 비닐류 등의 분리 배출 요령입니다.

 첫째, 페트병 등의 플라스틱 용기는 음식물 등 내용물을 깨끗이 비우고, 부착된 상표 등 다른 재질로 된 부분 제거하여 압착한 후 배출합니다. 페트병 같은 경우는 압축한 후 뚜껑을 닫으면 압착된 상태로 배출할 수 있습니다.

둘째, 기타 플라스틱류는 다른 재질을 제거한 후 배출해야 합니다. , 알약 포장재, 카세트테이프 등 여러 재질이 섞이고 분리가 어려운 제품은 종량제 봉투 등으로 배출하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필름류와 같은 비닐류는 내용물을 비우고 다른 재질로 된 부분(부착상표 등)을 제거한 후 배출합니다. 음식물 등 이물질이 묻었으면 씻어서 배출하며 이물질 제거가 어려운 경우에는 종량제 봉투로 배출해야 합니다.

넷째, 스티로폼과 같은 발포합성수지는 내용물을 완전히 비우고 부착상표 등을 제거, 이물질이 묻었으면 씻어서 배출합니다. TV, 냉장고 등 포장·운반에 사용된 스티로폼은 되도록 제품구입처로 반납하는 것이 좋습니다.

케냐에서는 비닐 포장재를 사용하기만 해도 몇 천만원의 벌금이 나온다고 합니다. 국민 평균 소득이 20여만원 정도인데 비닐 봉투 하나 사용했다고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동물의 낙원인 케냐가 비닐봉투로 인해 동물들이 죽거나 병에 걸려 결국 인간에게도 피해를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다같이 분리배출 요령을 잘 익혀 재활용되는 생활폐기물이 많아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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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저민 프랭클린은 피뢰침과 다초점 렌즈 등을 발명한 발명가입니다. 또한 미국을 건국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정치가이면서 발명가, 그리고 신문사까지 경영한 언론인입니다. 이렇게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사람이기에 미국 달러화에 그의 얼굴이 새겨졌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행복한 인생을 보냈습니다. 내적으로도 행복하고, 외적으로도 행복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이렇게 행복한 인생을 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벤저민 프랭클린 스스로 정한 13가지 덕목에 있었습니다. 13가지 덕목을 단순히 선정한 것이 아니라 평생동안 자신의 수첩에 항상 기록하고, 잘 실행했는지 실행하지 못했는지 끊임없이 확인했습니다. 또 버츄카드처럼 일주일마다 13가지 덕목 중 한가지를 골라 그것을 집중적으로 실천하고자 노력했고, 늘 실천여부를 확인했습니다. 이런 습관이 있었기에 그는 늘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보람있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벤저민 프랭클린의 13가지 덕목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1. 절제: 과식과 과음을 삼갑니다. - 저는 과식을 가끔 하는데, 먹고 나면 후회를 합니다. 속이 거북하고 힘이 듭니다. 과음은 거의 하지 않지만 1년에 1~2회 정도 하고 있습니다. 음주도 하고 나면 그 다음 날 후회 막심입니다. 그래도 절제 덕목을 비교적 잘 지킵니다.

2. 침묵: 타인과 자신에게 이로운 것 외에는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대화를 피한다. - 저는 쓸데없는 대화를 잘 하지 않으니 이것은 잘 지키는 것 같습니다.

3. 질서: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정돈하고, 모든 일은 정해진 시간을 지킨다. - 물건 정리가 잘 되지 않아 말만 정리해야지 하고, 행동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제 물건을 제자리에 잘 정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도 잘 지키지 못하고 계획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쉬운 점입니다. 

4. 결단: 해야 할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결심한 일을 반드시 행한다. - 결단은 잘 내리는 편이지만 그 결단에 대한 행동을 꾸준하게 실천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하다가 나중에는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아 결단 덕목을 잘 지켜야 되겠습니다.

5. 절약: 타인과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 외에는 지출을 삼가고, 낭비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지출을 삼가야 하는데 충동구매를 가끔 하고 있습니다. 낭비벽은 없지만 값비싼 물건을 아무 생각없이 충동구매하고서 후회하는 경우가 있어 반성합니다.

6. 근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유익한 일을 모색하고 쓸모없는 행위는 끊어 버린다. - 근면한 행동을 하고 있지만 유익한 일을 모색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좀더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습니다.

7. 진실: 사람을 속여 해치지 않는다. - 이것은 거의 하지 않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사람을 속이지 않고 진실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8. 정의: 남에게 해를 주지 않으며 해로운 일을 해서도 안 된다. - 남에게 해를 주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으니 이것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로운 일도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9. 중용: 생활의 균형을 지키고 화내지 않으며, 관용을 베푼다. - 아! 이것은 많이 반성해야 할 듯 합니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화를 내면서 했던 행동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저도 아들에게 가끔 화를 냅니다. 자꾸 위축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용의 정신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10. 청결: 몸과 의복, 주변을 불결하게 하지 않는다. -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냄새가 난다고 하던데 저는 몸과 의복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생활을 하니 이것도 잘 지키고 있습니다.

11. 평정: 하찮은 일, 피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 - 평정심을 갖는 것이 저에게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제가 평정심을 잃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일이 전개될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12. 순결: 자신이나 남의 평안과 명성을 흐리거나 해칠 행동은 하지 않는다. - 남의 평안이나 명성을 해치려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지금은 이것도 잘 지키고 있는 편입니다.

13. 겸손: 예수나 소크라테스를 본받는다. - 종교는 천주교이지만 성당에 나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겸손한 생활태도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프랭클린이 미국 사람이라 소크라테스가 나온 것 같은데, 아마 동양 사람이라면 공자나 맹자를 본받는다 라고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저는 어머니를 위해 싸웁니다."

 2018년 3월 31일 청주 충청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TFC드림5' 메인이벤트에서 한국의 장정혁(20) 선수와 일본의 4승 무패의 신예 천재 파이터 니시카와 야마토(17)와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니시카와는 미래의 챔피언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특급 파이터입니다. 경기 전 많은 전문가들이 니시카와의 승리를 예상하였습니다. 전문가들의 예상한 대로 장정혁 선수는 니시카와 선수에게 펀치를 많이 허용하여 매우 힘든 경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니시카와의 강한 펀치가 장정혁 선수의 얼굴을 강타하였습니다. 다리가 풀릴 정도의 강펀치였습니다.

장정혁 : '우! 여기서 지면 나는 끝이다. 지금 내 뒤에는 인민군이 쫓아오고 있다. 여기서 잡히면 나와 어머니는 또 감옥에 가야 한다.'

누가 봐도 장정혁 선수의 패배가 예상되는 순간 장선수는 있는 힘을 다해 상대에게 저돌적으로 돌진하였습니다. 그렇게 돌진하다 뻗은 강력한 돌주먹이 니시카와 선수의 얼굴을 때렸습니다. 니시카와 선수는 충격으로 넘어져 뒤구르기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지만 이미 데미지를 입은 상태라 장선수의 강력한 펀치 세례를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연속적인 펀치로 프로 데뷔전에서 역전 KO승을 거두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집고 얻어낸 데뷔전 승리라 의미가 더 컸습니다.

장정혁: 저는 한번 목숨을 걸어봤기 때문에 니시카와 펀치 정도는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한반도 최북단 함경북도 온성이 고향인 장정혁 선수는 먹을 것이 없어 어머니와 죽음을 무릅쓰고 중국땅으로 탈북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나이가 고작 12살이었습니다. 중국에 도착한 낯선 곳에서 그를 맞이한 것은 차별과 괴롭힘이었습니다. 그럴수록 자신이 강해져야만 엄마를 지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헌옷과 페트병에 물을 넣은 샌드백으로 매일 훈련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중국 공안에 잡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또 다시 탈출을 합니다. 브로커를 통해 어렵사리 태국으로 탈출하지만 불법체류자로 잡혀서 감옥생활을 합니다. 그 감옥에는 흉악범들이 있어 매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달 만에 석방되어 한국으로 오게 된 장선수는 새로운 터전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도 자신과 어머니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전찬열 감독의 눈에 띄어 본격적인 파이터로서 거듭나게 됩니다. 전찬열 감독의 가르침,  장선수의 절심함과 성실한 훈련이 프로데뷔전 KO승이라는 열매를 얻게 된 것입니다. 저는 가끔 힘들고 어려울 때는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탓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 탓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장정혁 선수의 시합 모습과 그가 살아온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렇게 어린 선수가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며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신선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장정혁 선수가 세계를 제패하고 늘 어머니와 함께 더욱 행복한 생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야생마 장정혁 선수! 파이팅. 전찬열 감독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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