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와 코뼈 부러진 팬의 만남

호날두

유럽 축구장을 찾아서 직관해 보면

경기장과 관중석 사이가 가까이 있어

슛을 하거나 공을 밖으로 차낼때

관중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강력한 슛을 했는데

이게 골대를 벗어나면 그대로 관중석으로

날아갑니다.

이걸 관중이 맞으면

그 충격이 어마어마합니다.


호날두 선수는 누구나 아는

유명하고 축구를 잘하는 선수입니다.

또한 선행을 잘하기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탈세때문에 홍역을 치루고

이탈리아 리그로 넘어갔는데요.

그가 빠진 레알 마드리드는 요즘

힘을 제대로 못쓰고 있어

호날두의 위상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탈세 문제도 호날두의 입장은

구단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알았기에

자신은 세금에 대해 잘 모른다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하여간 이 문제도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2일 호날두의 유벤투스와 키에보와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선수들은 경기를 위해 사전에 그라운드에서 몸을 풉니다.

호날두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몸을 풀고 달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슛 연습을 했는데

하필 골대를 벗어나 관중석으로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호날두의 강슛은 관중석의 엘레나 디 마르트노라는

학생의 얼굴을 강타하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학생은 코뼈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경기장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사고입니다.

하지만 호날두는 자신의 슛에 마르트노 학생의

코뼈가 부러졌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마리트노 학생은 자신의 sns에

"호날두의 슛에 얼굴을 맞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나는 호날두의 저녁 식사 초대를 기다릴 것이다." 라고 하며

유쾌하게 웃어 넘겼습니다.


이 사실을 접한 호날두는

코뼈가 부러진 마르티노 학생을 만나

자신의 싸인이 담긴 유니폼을 선물로 주고

함께 다정스럽게 사진도 찍었다고 합니다.


공에 맞아 코뼈가 부러졌지만

세계적인 대스타를 직접 만난 마르티노 학생은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학생을 직접 만남을 가진

호날두의 팬에 대한 사랑이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검은예수 드록바 은퇴하다

검은예수

2005년 코트디부아르는 드록바의 활약에 힘입어 수단을 꺾고

2006년 독일 월드컵 출전권을 따냈습니다.

이때 드록바는 무릎을 꿇고 호소합니다.

"코트디부아르 국민들이여,

우리들은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해

숨이 멎을 정도로 뛰었습니다.

우리 국민들과 함께 목표를 공유하고 함께 뛴다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용서합시다.

제발 일주일만이라도 총을 내려놓고

전쟁을 멈춰줍시다."


이 호소는 정부군과 반군 모두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수년간 이어지던 내전을 중단하고

2007년 평화협정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축구로 전쟁을 멈췄다고 해서 검은 예수라고 불리웠던

디디에 드로그바가 정든 그라운드를 떠납니다.


6세때 프랑스로 건너가 갖은 인종 차별을

꿋꿋하게 견뎌내고 1998년 프랑스 르망에서

프로로 데뷔합니다.

이후 갱강에서 뛰게 됩니다.

이때도 '검은 00아. 바나나나 먹어라. 고향으로 돌아가라."

라고 인종 차별을 겪습니다.

하지만 그걸 이겨내고 2003~2004시즌에는

올랭피크 마르세유에서 32골을 뽑아냅니다.

드록바 은퇴

이때 모리뉴 감독이 언젠가 같이 뛰자라는 말로

스카우트 하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 말대로 모리뉴 감독이 있는 첼시로 이적합니다.

 드록바의 활약으로 프리미어리그와 FA컵을 4회나 우승합니다.

특히 2012년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골을 넣으며 첼시의 우승을 선사합니다.

 이후 중국, 터키, 캐나다, 미국 리그를 거치면서

이번에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큰 키를 이용한 헤딩과 폭발적인 슛을 볼 수는 없지만

자선단체 활동에서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향의 병원 건립을 위해 펩시콜라 광고료를 전액 기부하고,

국제 사회의 평화를 위해 은퇴 후에도

바쁜 일정을 보낼 것이라고 합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은퇴 후 드록바의 앞날에 행운을 빌어줍니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은 미국 프로농구의 전설입니다.

그는 농구 은퇴 후 새로운 도전에 나섭니다.

바로 프로야구입니다.

하지만 농구에서는 대선수였지만 프로야구에서는 볼품없는 선수로 뛰다가 선수생활을 그만 두었지요.

이제 그 길을 우샤인 볼트가 갈지, 아니면 성공의 길로 갈지 주목됩니다.

그는 지난 8월 31일

호주 프로축구 센트럴 코스트와 아마추어 팀과의 친선 경기에 교체 선수로 출전하여 20분간 경기장을 누볐습니다.

빠른 발로 공을 차며 안정적인 패스를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단거리 육상 선수답게 지구력과 체력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20분 정도 뛰었는데 체력은 급속도로 고갈되어 공을 차는 데 잔 실수가 있었습니다.

낙천적인 성격으로 항상 웃음을 보이는 볼트는 축구 공도 즐겁게 차며 성공하는 축구 선수가 되었으면 합니다.

가급적 공격수보다는 수비수가 어울린다는 델 보스케 감독의 충고처럼 수비수를 하는 것이 어떨지 생각해봅니다.

큰 키와 우람한 신체조건, 발 빠른 스피드를 마음껏 활용하면 상대 공격수들이 섣부른 공격을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부족한 체력은 꾸준한 웨이트닝과 달리기로 극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호주 리그에서 베스트 11이 되는 그날을 기대해 봅니다.


한국 축구의 돌연변이라고 불리우는 손흥민

그를 키워낸 손부삼천지교라 불리우는 아버지 손웅정

아시안게임 축구 우승으로 손흥민 선수의 몸값은 치솟고 있습니다.

2013년 레버쿠젠 이적료 130억원

2015년 토트넘 이적료 397억원

2018년 1194억원

병역면제 후 몸값은 자그마치 1338억원으로 세계 25위 안에 드는 몸값입니다.


손흥민을 이렇게 훌륭한 선수로 거듭나게 한 장본인은 바로 아버지 손웅정.

손웅정은 현재 SON축구아카데미 총감독입니다. 

현대와 일화 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나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28살 때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은퇴하였습니다. 아쉽게 은퇴한 그는 손흥민이라는 아들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어했고, 자신처럼 기술없는 선수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고향 춘천으로 낙향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매일 양발 슈팅 1000개, 2단 줄넘기 수 천번을 뛰게 하였습니다. 

손흥민이 16살 될 때까지 정식 경기는 내보내니 않고, 오로지 재야 무협 고수처럼 매일 6시간씩 기본기 훈련만 가르쳤습니다. 

 독일 함부르크 유소년팀에 입단했을 때 아버지는 훈련장 옆에 숙소를 마련하고 새벽마다 아들과 똑같이 훈련을 실시하였습니다. 30살이나 많은 아버지도 똑같이 훈련을 하니 손흥민 선수도 꾀를 부릴 수 없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손웅정 씨의 독특한 훈련방법을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토트넘 커뮤니티에서는 손웅정씨를 토트넘 유소년팀 지도자로 모실 것을 건의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유난을 떨어도 아들이 하기 싫어하고 꾀를 부리면 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군소리 없이 잘 따라했던 아들이었기에 오늘날 세계적인 축구선수로 우뚝 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국가대표 평가전인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유럽에서 비행기 타고 왔는데 고작 몇 분만 경기에 뛰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손웅정은 인터뷰에서 "아들이 소속팀에 전념할 수 있게 대표팀 차출을 자제해 달라"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와전되어 손흥민 선수가 대표팀 차출을 거부한다고 인터넷에서 떠들어서 저도 그때 버릇없는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이 아니고 또 오해해서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이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한국에서 나오기 힘든 축구 선수를 만든 손웅정. 참 대단한 분입니다. SON축구 아카데미에서 제2, 제3의 손흥민 선수가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