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평화를 염원한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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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일본은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정치를 실시합니다.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는데 앞장선 일본의 이토히로부미

그를 1대 통감으로 조선에 파견시킵니다.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고자 헤이그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파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일본은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군대도 해산시킵니다.

이렇게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원흉 이토히로부미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 내립니다. 

그때 이토의 앞에 서서 그를 저격하고 외친 말

꼬레아 우라 - 대한민국 만세


이토히로부미 저격 후 체포되어 러시아 법정이 아닌 일본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첫 공판 후 내려진 판결은

<안중근!!! 사형>

사형이 내려지고 수감생활을 하면서 그는 책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일본인에게 말합니다.

안중근: 사형 집행 날짜를 한 달 늦추어 줄 수 있는가? 꼭 완성하고 싶은 책이 있다.

일본놈: 어찌 한달뿐이겠는가? 몇 달이 걸리더라도 특별히 허가할 것이니 걱정 말라.

시간을 약속 받은 청년 안중근은 항소도 포기한 채 책을 열심히 씁니다.

하지만 약속과는 달리 이제 막 서문과 첫 장을 마친 어느 날

안중근은 일본의 예정되었던 날짜에 사형을 당하고 맙니다.

그날이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였습니다.

그러다가 69년 지난 일본의 국회도서관 자료실의 

수많은 책 더미 속에서 발견된 안중근의 미완성 저서 동양평화론

-수백년 동안 유럽 열강을 이끈 것은 도덕을 상실한 마음이다.

-귀중한 생명들이 무수히 희생되니 이들의 시체로 피바다를 이루는 날들이 끊이지 않는다.

-서양이 동양을 침탈하는 암울한 현실에서 힘을 다해 방어하는 것이 제일가는 방법이다.


재판 시 판사가 물었던 말이 있습니다.

판사: 피고가 마음에 품고 있다는 정책은 무엇인가?

안중근: 일본은 야심을 버리고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해야 한다. 

          아시아 공동으로 은행을 설립하고 공동화폐를 발행해 상호 신뢰를 쌓아야 한다.

          강건한 청년을 모집하여 군단을 조성하고 서로의 언어를 배워 각국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100여년전에 유럽 연합과 같은 공동체를 구상했던 안중근의 생각이 놀랍기만 합니다.

미완으로 남은 동양평화론에는 어떤 내용을 쓰고자 했는지 짐작은 가지만 

미완으로 남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큽니다.

지금 어디 어느 땅에서 쉬고 계시는지 시신조차 찾지 못해 조국의 품에 안기지 못한 안중근 의사...

그의 애국심과 평화정신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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