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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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위례성시대, 웅진시대, 사비시대로 나뉘어 집니다. 온조와 비류의 이야기가 있는 위례성에서 문주왕의 웅진천도까지 한강유역을 차지하며 발전해왔습니다. 고이왕 때 관제를 정비하고, 공복을 제정하고, 율령을 반포하고, 목지국을 병합하였으며, 한강 유역을 완전히 차지하였습니다. 근초고왕 때 평양성을 공격하기도 하였고 이때 고구려 왕인 고국원왕이 전사합니다. 고국원왕은 백제와 전투 이전에 모용선비라는 강적과 싸우고 또 백제 근초고왕을 만나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전쟁터에서 죽은 고구려 유일한 왕이 되었습니다. 마한을 병합한 근초고왕은 요서, 산둥, 일본까지 진출하였습니다. 가야의 지배권을 행사하고, 왕위 부자 세습을 확립하였습니다. 침류왕때에는 동진에서 마라난타라는 사람이 백제로 와서 불교가 전래되었습니다. 비유왕때에는 신라의 눌지왕과 나제 동맹을 맺어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대비하였습니다. 개로왕은 북위에 국서를 보내 백제를 도와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북위는 고구려와 싸울 생각이 없었고, 북위가 고구려에 사신을 파견하였습니다. 고구려는 백제가 북위와 함께 고구려를 치려고 했던 것을 북위의 사신을 통해 알게 됩니다. 그래서 백제 정벌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림이라는 스님을 백제에 첩자로 보내 백제를 정탐하도록 하였습니다. 도림은 개로왕이 바둑을 아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궁궐에 들어가 바둑을 함께 두기를 청하였습니다. 개로왕은 좋은 바둑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하며 수시로 도림과 바둑을 두었습니다. 개로왕의 신임을 얻은 도림은 왕권의 위세를 높여야 한다고 하며 대규모 공사를 건의하였습니다. 도림의 말대로 대규모 공사를 벌여 나라의 창고는 비어져 갔습니다. 살기 힘들어진 백성들은 개로왕을 원망하였으며 때는 이때다 라고 생각한 고구려는 백제를 공격하였ㅅ브니다. 그리고 한강유역을 고구려에 빼앗기고 개로왕도 고구려 군에 의해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의 아들 문주왕은 웅진으로 천도하고 왕권은 많이 약화되어 귀족 들이 국정을 주도해 나갔습니다. 동성왕은 신라와 결혼동맹을 맺었으며 무령왕 때 22담로를 설치하여 왕족을 파견, 지방을 통치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성왕은 국호를 남부여로 고치고, 사비로 천도하였으며, 중앙 22부, 수도 5부, 지방 5방을 정비하였습니다. 불교를 장려하고 일본에 노리사치계라는 사람이 불교를 전파하기도 하였습니다. 중국의 남조와 활발한 교류가 있었으며 나제동맹으로 고구려 세력을 몰아내고 일시적으로나마 한강을 되찾았으나 진흥왕에 의해 한강 유역도 빼앗겼습니다. 관산성 전투에서 왕자 창(위덕왕)이 고립되자 성왕이 직접 구하려 가다가 신라의 복병을 만나 기습을 당해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윤충으로 하여금 대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켜 대야성주인 품석을 죽였습니다. 품석은 김춘추의 사위로 김춘추가 애지중지하던 딸까지 죽어서 김춘추는 백제에 대한 원한이 깊었습니다. 그래서 김춘추는 고구려에 원병을 요청하다가 실패하고, 당나라와 군사동맹을 맺어 백제를 공격하여 백제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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