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서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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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 이야기

중국에서 여자로 권력을 누리거나 황제까지 오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측천무후와 서태후입니다.


측천무후는 자신의 아들까지 몰아내고 황제에 오른 입지전적의 여걸입니다.

하지만 당나라를 더욱 부강하게 만드는 기틀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서태후는 그렇지 못하고 악녀의 이미지가 더욱 강합니다.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난 그녀는 출세의 꿈을 안고 궁녀로 들어갑니다.

야망까지 있어 함풍제를 모시는 환관들의 환심을 사서

드디어 함풍제의 눈에 들게 됩니다.


함풍제의 혈육까지 낳아 의귀비로 봉해집니다.

당시 청나라는 나라 안팎으로 매우 어수선했습니다.

대내적으로 태평천국의 난,

대외적으로는 영국과 프랑스의 침입으로 나라가 힘들었습니다.

서태후는 함풍제 주변에서 정치를 관여하기도 하였는데,

그만 함풍제가 병사하고 맙니다.

함풍제가 죽고 난 다음 서태후가 낳은 아들

이외에는 후계자로 마땅한 사람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5살밖에 안된 동치제가 황제로 즉위합니다.

 5살밖에 안된 황제이므로 황제의 어머니인 서태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서태후의 수렴청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서태후는 동태후에게 도움을 청하여 둘이 함께 수렴청정을 합니다.

공동 수렴청정을 하는 것이었으나

당시 동태후는 글을 잘 읽지 못하고,

정치에 뜻이 없어 서태후가 정치를 이끌어 가게 됩니다.

(자금성 동쪽에 살아 동태후, 서쪽에 살아 서태후라는 명칭이 붙여짐)


함풍제 동생인 공친왕과 연대하여 수렴청정을 하던 서태후는

청나라의 자강운동에 힘을 쏟아 태평천국의 난도 잔입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동치제는 친엄마인 서태후보다 동태후를 더 따랐고,

황후 간택도 동태후가 추천한 인물을 선택하였다.

이에 서태후는 사치로 스트레스를 풀었고,

수천벌의 옷, 수많은 보석에 대한 집착이 강했습니다.


서태후가 분수에 맞지 않게 생활하자

동태후가 서태후에게 함풍제의 유서

-만약 서태후가 분수를 지키지 않으면 죽여라-를 보여줍니다.

이에 서태후는 깜짝 놀라 납작 업드립니다.

어느날 동태후가 병이나서 서태후는 지극정성으로 간병합니다.

이에 감동한 동태후는 함풍제의 유서를 소각합니다.


유서가 없어지니 서태후는 이제 동태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외간 남자들을 불러다 정을 통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 동치제에게도 정치에 관심없도록 향락의 세계로 인도해 줍니다.

결국 동치제는 향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성병에 걸려 죽게 됩니다.


다음 황위는 함풍제의 동생과 자신의 여동생 사이에서 태어난

4살짜리 광서제가 즉위합니다.

광서제는 커감에 따라 부패해가는 청나라를 보며 걱정을 하지만

서태후의 권력이 너무 막강해 하고 싶은 일을 못합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입지를 확립하기 위해 청일 전쟁을 일으키지만,

서태후가 그 유명한 이화원을 건립하는데 전쟁자금을 빼돌립니다.

(이화원이 지금은 관광지로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결국 일본의 승리로 청일전쟁은 끝이 납니다.

광서제가 변법자강운동을 하려고 하지만

그를 유폐시키고 광서제를 따르는 사람들을 모두 죽입니다.


누구도 서태후를 제지할 수 없는 상황이고, 그녀는 사치와 향락은 점점 커져만 갑니다.

반면 청나라는 더욱 쇠약해져 가고 몰락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녀 역시 늙고 쇠약해진 가운데 생일잔치에서

너무 많은 음식을 먹고 이질에 걸려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유언을 남깁니다.

-다시는 여자가 정치를 하지 못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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