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의 유래

와신상담의 유래


BC 496년 오왕 합려는 월왕 구천과의 전투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오왕 합려는 간신히 도망갔으나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죽고 말았다.


죽을 때 태자 부차에게 나의 원수를 갚아 달라고 유언을 하였다.

그때부터 태자 부차는 아버지의 유언을 가슴 깊이 새기며,

편안한 잠자리가 아닌 거친 장작더미에서

잠을 자며 복수의 칼을 갈았다.


오왕 부차가 복수를 위해 한을 품고 있다는 것을

월왕 구천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월왕 구천은 오나라를 정벌하러 갔다.

하지만 그때는 오왕 부차가 군사력을 키우고,

치밀한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월왕 구천은 패퇴하고 말았다.


월왕 구천은 대부분의 영토를 오나라에게 주고,

신하가 된다는 조건으로 간신히 월나라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제 월왕 구천은 쓸개를 늘 옆에 두고

맛을 보며 복수할 날만 기다렸다.

밥도 거친 밥만 먹고,

충신을 곁에 두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였다.

특히 범려의 말을 잘 듣고 복수를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오왕 부차가 미인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서시란 여인을 미인계로 유혹하였다.

오왕 부차는 서시를 매우 총애하게 되고,

월나라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하였다.

서시에 빠져 정사를 잘 돌보지 않자, 오자서가 간언을 하였다.

서시를 멀리하고 국정을 살피라는 수차례 간언을 하자

오왕은 오자서를 차츰 그를 멀리하게 된다.

오자서를 오나라의 운명이 바람앞에 등불이라 여기고,

자신의 아들을 제나라로 보낸다.

그런데 그와 사이가 나빴던 백비라는 사람이 모함을 하여

오왕 부차는 오자서에게 자결하라고 명검을 보낸다.


오자서는 한탄하며 죽는데, 

그때 자신의 두 눈을 빼서 동문에 걸어달 라고 하였다.

오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오왕 부차는 이 소식에 격노하여

오자서 시신을 강물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국력을 계속 키우던 월나라 구천은

오왕 부차가 제후들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비운 틈을 이용하여 급습하였다. 

그동안 길러온 군사력을 이용하여

대대적인 공격으로 오나라의 항복을 받아냈다.


다시 월왕 구천은 지난날의 치욕을 씻은 것이다.


오왕 부차가 자신을 살려둔 것처럼,

구천은 오왕 부차를 살려두고

귀양을 보내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부차는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고,

국정을 게을리 한 것을 후회하며 자결하고 말았다.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의 고사에서 나온 것이

와신상담의 유래이다.


와신 - 臥薪 - 통나무, 장작나무 위에 눕다.

상담 - 嘗膽 - 쓸개의 맛을 보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당연히

사이가 좋지 않는 나라였다.

그래서 지금도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을 말할 때

오월 이라고 말을 한다.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이 같은 일을 하게 될 때는

<오월동주>라고 한다.

즉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끼지 같은 배,

같은 장소에 함께 있을 때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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