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태종과 위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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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과 위징


위징은 당의 황태자 이건성의 휘하에 있으며

후일 당태종인 이세민을 죽여야 한다고

여러 차례 권고했다.


이세민이 이건성을 제거한 현무문의 변 이후

어떤 사람이 위징이

이세민을 제거하려 했다고 고변했다.


이세민은 위징을 불러다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지 호되게 추궁했다.

그러자 위징은 태연하게도

만일 황태자(이건성)가 자신의 말만 들었어도

오늘과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대신들은 이젠 위징은 죽음을 면치 못하겠구나 생각했는데

도리어 이세민은 위징의 당당함과 정직함에 매료되어

그를 간의대부로 임명한다.


어느 날 당태종은 18세가 안되었어도

키가 크고 건장한 남자라면 징집하라고

조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위징에게 하급 기관에 보내라고 했는데

위징은 보내지 않았다.

당태종이 여러 번 이야기해도

위징이 조서를 보내지 않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위징을 불러들어 꾸짖었다.

"위징, 왜 조서 안내려보내? 죽을래?"

"소신은 폐하의 조서에 찬성하지 못합니다.

군대가 아무리 사람이 많으면 뭐합니까?

군대란 얼마나 훈련하고,

지휘하느냐에 따라 강군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연못의 물고기를 잡는다고 물을 다 빼버리면

물고기를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잡을 물고기가 없어집니다.

지금처럼 군사를 징집하면

나중에는 어디에서 병사를

충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당태종을 17여년간을 보필하며

당태종이 듣기 거북할 정도의 간언을

200여차례나 했다고 한다.


위징이 나이들어 병석에 눕자

당태종은 위징을 병문안 갔다.

그자리에서 위징은 태평성대일수록

위태로울 때를 대비하라고

또 태종이 듣기 싫은 간언을 한다.


위징이 죽자 당태종은 묘비에 비문을 친히 썼다.

그리고 그 비문을 깨버렸다.

그동안 심한 잔소리(?)가 생각나서 애꿎은

묘비에 화풀이를 해댄것이다.


이제는 잔소리꾼도 없으니

(방현령은 고구려 원정을 반대)

당태종은 그렇게 정벌하고 싶었던

고구려를 쳐들어간다.

금방 점령할 것 같았던 고구려였는데

양만춘이 버티는 안시성에서

더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참패하고 퇴각한다.


이때 퇴각하면서 한말은

"아, 위징이 살아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하고 장탄식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당나라에 돌아가자마자 한 일이

위징의 묘비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안시성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눈을 하나 잃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고구려 원정으로 병에 오래 시달리다가

죽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현무문의 변>

당태종 이세민이

황태자 이건성과 동생 이원길이

아버지의 후궁들과 은밀한 관계라고

거짓 고변했다.

화가 난 아버지 고조는 두 사람을

궁으로 들어오게 했다.

아버지의 명령으로 궁에 들어오는

황태자와 동생을 현무문에서 죽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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