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 경복궁 중건 당백전과 원납전

흥선대원군 경복궁 중건 당백전과 원납전

 철종이 아들 없이 죽자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이 왕위에 오른다. 그가 고종이다. 그런데 조선 법궁인 경복궁이 임진왜란때 불타서 방치되다시피 했다. 왕권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을 실시한다.

처음에는 백성들의 호응으로 공사가 착착 진행되었으나, 가면 갈수록 막대한 돈이 들어가다보니 국고만으로는 재정이 부족해졌다.


원납전 실시

그래서 흥선대원군은 기부금 형태의 돈을 걷는다. 원하는 만큼, 또는 원해서 내는 돈이라는 뜻의 원납전이다. 하지만 백성들은 기부금을 원망스럽게, 원성 있는 돈으로 원납전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백성들의 원성을 들으며 강제로 거두는 기부금이 원납전이다.

당백전 발행

 그리고 당백전을 발행한다. 경복궁 중건, 군비 확장 등 많은 돈이 들어가자 원납전과 호포제 등을 실시한다. 그런데도 삼정의 문란 등으로 재정난은 계속된다. 그래서 당백전을 주조하여 상평통보보다 100배의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일시적이나마 거액의 돈을 재정으로 충당할 수 있었지만 화폐 질서는 순식간에 어지러워졌다. 상평통보를 가진 상인은 당백전과 교환하기를 꺼려하였고, 상인들도 당백전을 받지 않아 물물교환하기에 이르렀다. 화폐가치가 폭락하여 물가는 폭발적으로 뛰었다. 이렇게 대혼란이 생기자 6개월만에 당백전은 폐지된다.


호포제 실시

호포제도 알아보자. 조선시대 초기에는 군대를 가야만 했다. 그러나 중기 이후에 농민들은 농사를 지어야 하므로 직업군인제도로 변모된다. 농민들은 군대를 가지 않는 대신 군포를 내야만 했다. 양반은 군포를 내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는 양반이 70%나 된다. 그러니 일반 백성들은 전정, 군정, 환곡 등 삼정의 문란으로 이루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그중 군포 납부를 개정한 것이 호포제이다. 즉 양반에게도 군포를 납부하게 한 것이다. 양반들은 반발을 했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내지 않고 하인 이름으로 내기도 했다. 양반들의 반대가 심해 완전하게 시행된 제도는 아니지만 양반에게도 호포를 내게 했다는 점이 개혁적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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