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기념관을 찾아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찾았다.

먼저 묵념을 하고 기념관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윤봉길 의사의 나라 사랑 정신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윤봉길은 1908년 예산에서 태어났다. 

1918년 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3.1운동의 영향으로

더 이상의 식민지 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덕산보통학교를 자퇴했다.

오치서숙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농촌 계몽운동에도 힘썼다.

그리고 이흑룡과의 만남에서

무장 독립항쟁의 중요성을 깨닫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때 남긴 말이 장부출가생불환이었다.

사나이 대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섰을 때에는

살아서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비장한 각오였다.

이때 그의 나이가 23세에 불과했다.


중국으로 건너가 만난 사람이 김구선생이다.

김구 선생과 모의한 것은 홍커우 의거이다.


운명의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일왕 생일 축하와

전승 기념 행사가 있던 날

윤봉길 의사는 행사장에 잠입하였다.

그리고 꺼내 든 것이 물통 폭탄이었다.

이날 의거로 단상에 있던 총사령관

시리카와 요시노리와

상해 일본 거류민단장

가와바타 테이지를 죽이고

여러 명에게 중상을 입히는데 성공하였다.

당시 중국 국민당 장제스는 

"중국 100만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 

라고 감탄을 하였다.


이후 중국 국민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놈에게 잡힌 윤봉길 의사는

모진 고문을 당하고,

결국 총살형으로 순국하셨다.


조선의 독립을 최고의 의미를 부여했던

윤봉길 의사의 숭고한 삶이 묻어나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예산 충의사) 탐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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