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녀 후아나의 삶

1. 후아나의 가족관계

광녀라고 알려진 후아나는
페르난도와 이사벨의 셋째 자식이다.
위로는 언니와 오빠가 있었다.
큰 언니는 포르투칼에 시집을 갔다.
페르난도는 둘째인 오빠와 셋째인 자신을
합스부르크 가문에 결혼시키려고 하였다.
그렇게 해야만 위협적인 프랑스에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2. 후아나와 펠리페

후아나는 어쩔 수 없이 합스부르크 가문에 시집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너무 멋진 남자를 만나게 된다.
바로 펠리페였다.
상당한 미남자였는데 나이도 동갑이어서
후아나는 한눈에 반하고 만다.
그래서 바로 펠리페와 결혼을 한다.
후아나는 펠리페를 너무나 사랑했다.

하지만 펠리페는 결혼 전에도
많은 여자들과 친분을 과시했는데
결혼 후에도 이여자 저여자 찝쩍거리며 바람을 피웠다.
후아나는 선천적으로 정신적 문제가 있어
집착과 분노가 심했다.
남편이 자꾸 밖으로 겉돌자 주술사들을 불러들여서
기괴하고 납득하지 못하는 행동을 자주 하였다.
그러니 사람들도 그녀를 보고 광녀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3. 후아나의 왕위 계승과 기행

한편 후아나의 언니와 오빠 그리고 그의 자식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일이 발생하였다.
셋째이므로 왕위 계승을 할 것이라 생각도 못했는데
별안간 카스티야아 아라곤의 왕위 계승자가 된 것이다.

이사벨 여왕 사후 카스티야 여왕이 되어 귀국하게 되는데
정신적인 것을 문제 삼은 페르난도가 섭정을 하며
권력을 독점한다.
이에 후아나는 남편 펠리페를 카스티야로 불러들인다.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펠리페가 갑자기 죽는다.
여기서 후아나는 가뜩이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데
완전 이성을 잃고 만다.

죽은 남편 펠리페를 살려보겠다고 용하다는
수도원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한다.
그것도 남편 시신이 든 관을 마차에 끌고 다니면서
기도를 한다고 다니니 국민들은 후아나에 대해
완전 실망하고 만다.

어떤 때는 고생고생하며 도착한 수도원에 수녀가 있다는
이유로 다른 수도원으로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죽은 남편이 살아나서
수도원의 수녀와 정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집착이 강했고,
정신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러자 아버지 페르난도는 그녀를 수도원에 감금시킨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 카를로스에게 왕위 계승권을 넘긴다.

왕위 정통성에 맞게 왕위에 올랐던 후아나는
유럽의 거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여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허울뿐...
단 하루도 편하게 자신의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감금된 생활을 해야만 했다.

정말 정신적인 문제로 감금된 채 살아야 했는지,
아니면 왕위 계승을 두고 벌어진 정치적 희생이었는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의 아들 카를로스가 왕위에 올라서도
감금된 자신의 어머니를 풀어주지 않고
그대로 평생을 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여행 시 가이드의 후아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집착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헛웃음이 나왔었다.
그래서 그녀를 그린 프라디야의 광녀 후아나 그림을 
다시 뜯어보았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그녀의 집착과 그녀의 하인들의
허탈감과 무기력, 절망감 등을 표현한
광녀 후아나를
한참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왕이지만 비참한 삶을 살았던
그녀가 한없이 가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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