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삶을 산 기부천사, 척 피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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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부자 찰스 프랜시스 척 피니가 약 11조원 이상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현지 시각으로 10일, 대서양 자선재단은 피니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전날에 별세하였다고 밝혔습니다. 대서양 자선재단은 피니가 설립한 재단으로, "피니가 자신의 인생을 세계 자선활동에 바친 것에 대해 애도한다"고 웹사이트에 글을 올렸습니다.

살아 있을 때 기부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2020년 9월까지, 피니는 미국, 아일랜드, 영국, 북아일랜드, 호주, 남아공, 베트남, 버뮤다, 그리고 쿠바에 80억 달러 이상을 기부했습니다. 이 금액은 그의 노후 생활을 위한 26억 원, 그리고 5명 자녀들에게 물려줄 유산을 제외한 그의 모든 재산이었습니다.

2011년 2월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자선단체에 기부할 것이라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와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워런 버핏과 함께 한 약속을 지킨 것입니다. 그의 자서전 살아있는 동안 기부하는 것에서 밝힌 바 있는 죽었을 때 하는 기부보다 살아있을 때 하는 기부가 더욱 재미있다 라는 것을 실천한 셈입니다.

피니는 자선활동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대학교, 병원, 과학 연구 및 인권 단체에 익명으로 기부했습니다. 그가 기부한 1,000여 개의 건물 가운데 어느 것 하나에도 그의 이름은 새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수혜자들은 돈이 익명으로 기부된 것임을 알지만 실제 출처를 알 수 없었습니다. 기부금 출처를 알 수 없게 하기 위해 자기앞수표로 지급하였기 때문입니다.

군대 제대 후 면세점 사업에 뛰어들어

피니는 1931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으며 고교 졸업 후 공군에 자원입대했습니다. 군에서 제대한 후에는 장학금을 받아 미국의 코넬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1956년에 코넬 대학을 졸업한 뒤, 유럽에서 귀국한 미국 병사들에게 술, 담배, 향수 등을 판매하는 면세점을 운영하였습니다.

이후 국제 관광이 급증함에 따라 면세점은 세계 주요 공항과 주요 도시에 매장을 설립하여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피니는 나이 50살에 벌써 뉴욕, 샌프란시스코, 콜로라도, 런던, 파리, 리비에라 등지에 호화로운 저택을 소유할 만큼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니는 그런 삶에 만족하지 않았고 즐겁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큰 연회나 요트에서 시간을 보내는 호화로운 생활이 괴로움을 가져다 주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많은 돈을 가질 권리가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고, 고가 물건을 구입하는 것도 매혹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사치를 버리고 행복을 찾은 삶

그때부트 피니는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게 살 것을 결심했습니다. 리무진을 처분하고 지하철과 택시를 이용했습니다. 비행기도 일등석이 아닌 이코노미 석을 타고, 옷은 기성복을 사고, 고급 식당도 가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집도 부인과 함께 임대아파트에서 거주하였을 정도로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익명으로 기부할 것을 다짐한 피니는 1982년에 영국령 버뮤다에서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피니가 재단을 설립하여 기부했다는 것은 DFS의 다른 공동 창업자가 루이비통모엣헤네시에 1997년 면세점 지분을 매각하면서 공개되었습니다.

피니는 10억 달러 이상의 금액을 코넬대학에 기부했는데 대학 측은 2012년에 피니에게 <업계의 아이콘> 으로 선정해 상을 수여했습니다. 당시 코넬 대학은 피니가 보통 2만원 정도의 시계를 차고 다닌다는 점에서 저렴한 카시오 시계를 부상으로 주었습니다. 이때 피니는 이베이에 팔 수 있는 시계를 선물해 줘서 고맙다고 하며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빌게이츠, 워런 버핏 등 세계적인 부자들도 척 피니를 존경한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런 사람이 또 나올수 있을까 하며 그의 삶이 위대하다고 말합니다.


피니는 "살아있을 때 기부하십시오. 부를 다른 사람에게 적절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속담에 개처럼 벌어 정승같이 쓴다라는 구절이 생각나는 피니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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